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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외모 9단계 나눠 품평... 온라인서 '내 사진' 성희롱 난도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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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외모 9단계 나눠 품평... 온라인서 '내 사진' 성희롱 난도질 당했다

입력
2021.11.04 04:20
수정
2021.11.04 14:44
10면
0 0

'헌팅 기술 공유' 온라인 커뮤니티 활개
'작업 대상' 여성의 사진·정보 무단 게시
외모 9단계 나눠 품평하며 성희롱 난무
"성적괴롭힘·약취유인죄로 처벌될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학가를 걷던 중 낯선 남성에게서 "마음에 든다.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거절하는 A씨를 10분가량 쫓아오던 그는 결국 A씨의 휴대폰을 빼앗아 자신의 연락처를 저장한 뒤 돌려주고 떠났다. A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남성의 계정이 자동 노출됐다.

그 계정에 별칭으로 적힌 문구가 의심스러웠던 A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남성은 해당 별칭으로 회원 수천 명 규모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고, 이 커뮤니티에는 회원들의 이른바 '헌팅(모르는 사람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연락처를 묻거나 만남을 요청하는 행위)' 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머지않아 A씨는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이 포함된 게시물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수천 명이 모여 '헌팅 기술·경험' 공유

'헌팅 커뮤니티' B카페 회원이 카페에 올린 단체 채팅방 캡처 일부. 길거리에서 번호를 얻어낸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B카페 캡처

'헌팅 커뮤니티' B카페 회원이 카페에 올린 단체 채팅방 캡처 일부. 길거리에서 번호를 얻어낸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B카페 캡처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커뮤니티는 여성을 상대로 한 '헌팅 기술'을 다룬다면서 남성만 가입시켜 비공개로 운영하는 B카페였다. 이곳에는 사설 학원을 차려 헌팅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소수의 '마스터'와 이들에게 배우고 있거나 관심을 보이는 다수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가입자 수는 이날 기준 5,571명이다. 마스터들이 운영하는 학원은 통상 헌팅 기술을 단계별로 세분화해 강의하는데, 강의료가 월 수백만 원 수준이다.

카페 활동과 별도로, 같은 강의를 듣는 회원들은 5~20명 규모로 채팅방을 따로 만들어 교류한다. 이들이 '어프로치(approach·접근)'라는 은어로 부르는 '실전 연습' 경험을 주고받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여기서 공유되는 정보 중 일부를 카페에 게시하는 식으로, 카페와 채팅방은 유기적으로 운영된다.

B카페는 회원 1만4,050명을 보유한 C카페와 함께 대표적인 '헌팅 커뮤니티'로 꼽히며, 이 밖에도 여러 비공개 커뮤니티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여성 신상정보 유출에 불법 촬영까지

'헌팅 커뮤니티' B카페 회원이 카페에 올린 단체 채팅방 캡처 일부. 길거리에서 번호를 얻어낸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B카페 캡처

'헌팅 커뮤니티' B카페 회원이 카페에 올린 단체 채팅방 캡처 일부. 길거리에서 번호를 얻어낸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B카페 캡처

문제는 이들이 '어프로치 후기'를 공유하면서 여성 신상정보도 함께 노출한다는 것이다. SNS 서비스가 보편화하면서 이제는 연락처만 알아도 상대방 계정에서 얼굴 사진을 포함해 개인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이런 행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B카페의 경우 카페 게시물에는 여성 얼굴이 온전히 드러난 사진은 올릴 수 없는 등 그나마 규제를 두고 있지만, 채팅방에서는 '접근 대상'의 사진은 물론이고 이름, 나이, 거주 지역, 직업 등 민감한 인적사항까지 무분별하게 오간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 품평도 다반사다. 헌팅 커뮤니티는 공통적으로 '어프로치 난이도'를 평가한다면서 여성 외모를 총 9단계에 나눠 평가하고 있다. 이때 'HB'라는 단위를 쓰는데, 이는 성적 매력이 있는 사람의 몸을 뜻하는 '핫 보디(Hot Body)'의 약자다. 이들 카페에 게시된 글에는 '처음이라 1HB를 공략했지만 쳐다보기도 힘든 얼굴이었다' '가슴이 커서 최소 7HB는 된다' 등 문제적 발언이 심심찮게 확인됐다.

일부 회원은 여성의 SNS 사진을 옮기는 수준을 넘어, 당사자가 모르게 사진을 찍어 게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엄연한 불법 촬영이다. C카페에는 지난달 핼러윈데이 때 서울 번화가에 모인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사진 다수가 모자이크 처리된 채 게시됐다. 이들은 채팅방에서 '어프로치할 만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고(高) HB가 많이 보인다'며 현장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1만4,000여 명 회원을 보유한 C카페의 게시글 목록. 회원들끼리 채팅방에 공유한 실전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C카페 캡처

1만4,000여 명 회원을 보유한 C카페의 게시글 목록. 회원들끼리 채팅방에 공유한 실전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C카페 캡처


"사이버상 성적 괴롭힘 적용될 여지"

A씨가 B카페에서 발견한 게시물은, 단체 채팅방에서 A씨 사진과 함께 외모 품평, 어프로치 후기 등을 주고받은 뒤 이를 캡처해서 올린 것이다. A씨는 그러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스토킹도 아니고 실제 추행도 아니라서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채팅방에 20여 명이 있던데 내 사진이 어떻게 변형되거나 유포될지 알 수 없어 공포스럽다"고 토로했다.

헌팅 커뮤니티 회원들의 이 같은 행태는 범법행위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헌팅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문제적 행위들은 넓게 볼 때 사이버 성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여성의 인적사항을 노출하는 행위는 성적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성적 괴롭힘 처벌 범위를 사이버 공간으로도 확대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헌팅 행위 자체도 대상이 미성년자라면 청소년성보호법상 미성년자약취유인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면서 "다만 성인 여성 대상이라면 형사 고소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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