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대형화에도 설치 기사는 단 1명
사고 위험에 고객의 감정노동 부담까지
전문가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시켜야"
삼성전자서비스 서현센터에 근무하는 A씨는 에어컨을 고치러 고객 집을 방문했다 20분간 갇혀 있었다. 제품 이상이 아니라 매립 배관 문제일 수 있다고 하자 고칠 때까지 나갈 수 없다며 욕설과 협박을 하고 가족 세 명이 입구를 막았다. 경찰을 부른 후에야 풀려났지만 끝내 사과는 받지 못했다.
LG하이케어솔루션 소속 정수기 관리 매니저인 B씨는 고객 집에서 반려견에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고객이라 치료비를 청구하지도 못하고 산재보험 신청을 알아봤지만 적용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B씨는 "5가구 중 1가구 정도 반려견이 있는데 가정 내에서는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아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전제품 갈수록 커지는데... "설치·수리 혼자 해야"
고객 가정을 방문해 가전제품 등을 설치·수리하는 노동자들의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품이 갈수록 대형화되면서 다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가 늘고 있는 데다 고객을 직접 대면하며 감정노동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형태종사자(특고)의 보호 규정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속노조는 2일 오전 '방문 노동자의 안전실태 증언대회'를 열고 대기업 자회사에 소속된 방문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을 다루는 수리기사들은 제품 대형화로 인해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김문석 삼성전자서비스 양천센터 분회장은 "가전제품의 용량이나 크기가 대형화되면서 무게와 부피가 큰 제품들이 많이 보급돼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근골격계에도 상당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기사 한 명을 요청하려면 동료에게 부탁을 하거나 회사에 별도로 지원을 요청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일을 하다 다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천센터에선 지난 9월 세탁기 수리를 하러 간 기사가 감전으로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욕설부터 신체 접촉까지... 감정노동 홀로 감당해야"
고객과 마찰을 겪는 사례도 흔히 벌어진다. 정수기 관리 매니저 중에는 고객의 귀중품이 없어졌다고 경찰 조사를 받거나 반려견에 물리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성 매니저들이 대부분이라 남성 고객이 신체 접촉을 시도하거나 업무와 무관한 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있다.
김진희 LG케어솔루션지회 수석부지회장은 "하루 평균 10가구 정도를 방문하는데 고객으로부터 심한 욕설이나 폭행, 성적 피해를 당했을 때도 회사의 보호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개인이 온전히 감정노동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특수고용형태종사자'(특고)로 분류돼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특고노동자 범위에는 방문 점검원과 가전제품 설치 및 수리 노동자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특고노동자에 대한 산안법 편입을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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