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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중 실족..."살 수 있다" 믿으며 초겨울 바닷속에서 90분을 버텼다

입력
2021.11.09 17: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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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환웅 소방장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2020년 11월 13일, 야간근무 중이었다. 밤의 고요함을 깨고 요란한 출동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0시 30분이었다. 지령 목소리는 상황이 굉장히 긴박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영종소방서는 인천국제공항 외에 여러 해수욕장, 해변을 관할한다. 그래서 다른 소방서에선 접하기 힘든 유형의 출동(항공사고 대비 출동, 수난출동 등)을 자주 나간다. 특히 을왕리해수욕장을 담당하는 용유119안전센터 구조대원들은 화재뿐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수난사고에도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날 신고내용은 왕산마리나(항구) 부근에서 낚시를 하다가 교량 아래 교각 사이를 건너던 일행 중 한 명이 거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 수난 사고야 다 다급하지만, 이번 실족 사고는 그 장소 자체가 매우 위험한 지역이라 예감이 더욱 좋지 않았다.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 어둠이 가득한 시간대, 그리고 무시 못 할 해풍과 서해 조류를 생각한다면 실종자(요구조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출동 내내 나를 감싸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수라장이었다. 줄줄이 도착하는 소방차의 경광불빛은 어두운 밤을 흔들어 깨워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는 듯했다. 실종자 일행들로부터 터져나오는 탄식과 초조한 목소리는 긴박감을 더했다.

우선 일행으로부터 사고경위를 파악했다. 교량 건너편에서 낚시를 하다 이동하려고 교각 사이를 지나는데 거친 물살에 순식간에 동료가 휩쓸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반쯤 넋 나간 상태로 실종된 동료를 찾고 있었다.

2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지휘팀은 일행들의 흥분을 가라앉힌 뒤 소방활동 범위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이어 육상팀이 모든 조명을 켜고 인근 바다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출동차에서 드라이 수트(부력조절 잠수복)를 착용한 채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즉각 구조보트를 띄워 조심스레 인근 해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사고지점 비좁은 교각 사이를 통과하는 순간 거센 물살이 느껴겼다. 영상 5도까지 떨어진 기온과 늦은 시간대, 이 정도의 조류에 휩쓸렸다면 어디까지 표류되었으며 얼마나 상태가 악화되었을지 각자의 추측은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조명빛과 보트 한 대로 진행되는 수색은 좁은 시야와 날카로운 바람, 흐르는 시간과 정면으로 싸우고 있었고 그 싸움은 서서히 내 의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15년간 각종 구조, 구급 현장에서 겪어온 경험들도 방해를 부추기고 있었다. 경험상 이런 악조건에서는 실종자를 발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발견하더라도 사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칫 우리가 먼저 섣부른 예측을 하고 지쳐버릴 수 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런 좋지 않은 감정들이 나를 제압하기 전, 정신을 다잡았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불안감들이 우리의 활동을 제약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소방관은 1%, 아니 일말의 가능성이 없다 해도 종결되지 않는 이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구조대원이 조금 더 수색 반경을 넓혀갔다.

보트를 띄운 지 80여 분이 지났을까. 막내 구조대원의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저기! 찾았습니다!!”

가리키는 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그곳에는 작은 공 모양의 물체가 떠 있었다. 신속히 접근하니 그것은 머리였다. 악조건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간신히 호흡을 유지하며 하체는 물에 잠긴 채 반쯤 누운 상태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보트 위로 끌어당겨 의식부터 확인했다. 호흡과 맥박은 살아있었고 의식은 많이 저하된 채로 낮은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담요로 체온을 유지한 채 신속히 지상으로 접안해 구급대에 인계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구급차 내에서 그는 의식저하 상태가 지속되었고 복부 팽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심전도 측정으로 상태를 주시하면서, 의료지도를 받아 비재호흡마스크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고 저체온증이 의심되므로 보온조치를 계속했다고 한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길, 적막 속에 가쁜 호흡 소리만이 맥박처럼 뛸 뿐이었다. 안도의 순간, 아마도 다들 다시 한번 현장을 복기했을 것이고 생각의 마지막 즈음에는 사명감과 자신감까지 가졌을 것이다.

나도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는 그간의 경험들에 함부로 감정이 휩쓸리지 않게 하리라고. 좋았던 현장에서의 경험은 살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의 것들은 밀어내 스스로를 지키자고. 신입소방원대원 시절의 초심과도 같았다. 그렇게 악조건 속에서도 버텨주었기에 우리는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병원 이송 후 그의 건강과 일상생활이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행여 있을지 모를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과 우리에 대한 미안함, 부담 등이 염려되어 함부로 물을 수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난 최근에서야 조심스레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트라우마와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복귀해 건강히 지낸다고 했다. 그제서야 그날의 출동이 비로소 마무리된 것 같았다.

“선생님, 혹시 그날 기억이 있나요? 그 한 시간 반 동안 어떻게 수면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

“흐릿하게나마 구급차 불빛이 보였어요. 그래서 살 수 있겠다 싶었죠. 소리칠 힘은 없어서 어릴 때 익힌 생존수영 자세로 버티고만 있었어요.”

“선생님, 그렇게 버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아준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덕분에 나 또한 초심을 되살리며 경험을 더할 수 있었다.

인천영종소방서 119구조대원

인천영종소방서 119구조대원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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