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택시기사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결정적 증거 없어 무죄 확정
장기미제로 분류돼 '제주판 살인의 추억' 사건으로도 불린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8일 성폭력범죄의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직 택시기사인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제주에서 보육교사 이모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이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관련기사: [완전범죄는 없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 실오라기 증거가 9년의 한 풀어줄까)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경찰은 폐쇄회로(CC)TV에 담긴 택시 외관 등을 근거로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박씨는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교제하던 여성을 시켜 숙소를 정리하고 제주를 떠나 서울·부산 등지에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채 생활했다.
사건은 그러나 장기미제로 남았다. 경찰은 이씨가 2009년 2월 1일 새벽 박씨 택시에 탄 뒤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으나, 부검의는 사망 시점을 이씨 시신이 발견된 2월 8일로부터 24시간 이내로 판단했다. 이후 경찰 수사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제주경찰청은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계기로 미제사건 전담팀을 꾸리면서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박씨가 운행한 택시에서 이씨가 입고 있던 무스탕에 달린 것과 비슷한 동물털을 찾아냈고, 이씨 옷에서는 박씨의 청바지와 유사한 섬유를 확보했다. 경찰은 쟁점이었던 이씨의 사망 시점도 동물실험 등을 통해 실종 당일인 2009년 2월 1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씨는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19년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법원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혐의를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취지다. 특히 1심 재판부는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박씨 청바지를 가져갔다며 청바지 섬유는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택시에서 발견된 동물털 역시 그와 비슷한 소재로 제작된 옷이 많아 완전히 동일한 섬유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동물실험이 모든 조건이 통제된 상태에서 이뤄진 게 아니었고, 피해자가 섭취한 음식물 등으로 봤을 때 실종 당일 사망한 것으로 단정하기 힘들다고 봤다. 재판부는 "동물털, 미세섬유 증거, CCTV 영상 등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박씨가 이씨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를 범인으로 봐야 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 역시 이날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및 그 예외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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