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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삶의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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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삶의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입력
2021.11.01 17: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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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 신간 에세이 '시절의 독서'
"독서 통해 세상 납득하기 위한 도구 찾아"

신간 에세이 '시절의 독서'를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출간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신간 에세이 '시절의 독서'를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출간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내 취향을 드러내거나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는 책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직업인이면서 아이를 키워 온 사람으로서 삶의 모순을 이겨낸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죠."

부정청탁금지법 제안자로 유명한 김영란(65) 전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한 '소수자의 대법관'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아 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의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무거운 책임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상처를 입을 때마다 그가 집어든 것은 책이었다. 때로는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1919~2013)이, 혹은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1939~ )가 삶의 멘토가 돼 줬다. 김 전 대법관은 신간 에세이 '시절의 독서'에 자신의 삶을 구성한 이 같은 독서의 경로를 밝혀 놓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 전 대법관은 "자유와 행복을 꿈꾸는 게 낯선 시대를 살아 오면서,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준 작가들은 내게 유일하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고 출간 동기를 밝혔다. 그는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이 '작은 아씨들'을 통해 자신의 현실보다 조금 더 이상적인 환상의 세계를 지었다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끌어들여 은유적으로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을 투영했다"며 "작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상상의 세계에 대입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2019년 4월부터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난 9월부터는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 전 대법관은 소문난 애독가다. 평생 유일하게 계속해 온 것이 책 읽기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2016년에는 책 읽기에 관한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을 '책 읽기의 쓸모'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직업적으로 읽는 법률서가 아닌 전공과 상관없는 독서에 관한 책이었다. "어린 시절에 책 이외에는 다른 놀거리가 별로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그는 "책 읽기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연신 겸연쩍어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번 책에서 독서의 여러 쓸모 중 문학이 주는 위로의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책을 통해 세상과 싸울 무기를 구하기보다 세상을 납득해 보려는 도구를 찾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가령 '모성'이라는 신화에 맞서 고군분투한 도리스 레싱의 삶과 문학에 전문직 여성으로서 살아남아야 했던 자신의 삶을 포개어 생각하며 연민을 느끼는 식이다.

그는 "목적 없는 독서"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버지니아 울프식' 책 읽기"다. 울프는 '한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사람은 독서가가 아닌 전문가'라거나 '실용서 위주로 책을 읽는 사람은 독서가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상상력이 동원되는 책 읽기를 권했다. 김 전 대법관은 "아는 세계에서 헤매는 것보다 미지의 세계를 헤맬 때 창의적인 것을 얻을 수 있다"며 "처음부터 쉽게 이해되는 책은 독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그렇게 나침반 없이 헤매며 계속해 온 책 읽기는 판사로서 판결을 내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문학이 불러일으키는 공감과 연민, 상상력이 공적·합리적 판단에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처럼 "소설을 통해 공감 능력을 키워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 특성을 이해하면서도 보편적 판결을 하는 데 도움이 돼 내 책 읽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연간 독서량이 수십 권에 이른다는 김 전 대법관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궁금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바다출판사 발행), 메리 매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 3부작' 중 두 번째 책인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현암사 발행)을 함께 읽고 있어요. 추천사를 부탁받은 헌법 서적도 한 권 있네요. 그래도 요즘은 눈이 아파서 예전만큼은 많이 읽지 못하는 것 같아요(웃음)."

시절의 독서·김영란 지음·창비 발행·280쪽·1만6,000원

시절의 독서·김영란 지음·창비 발행·280쪽·1만6,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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