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민을 돼지로 취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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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민을 돼지로 취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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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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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확산 속 대선 후보 '개 사과' 논란?
전달 방식 세련돼도 내용은 거짓일 수도
유권자 돼지 취급 세력, 상식으로 걸러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9월 5일 서울 SETEC에서 열린 2021 서울펫쇼에서 반려견들이 반려동물 용품을 구경하고 있다. 뉴시스

요즘 우리나라에서 포유류 가운데 가장 빠르게 번성하는 종(種)은 뭘까. 통계를 잡을 수 없는 쥐를 빼면, 주인공은 개다. 농식품부(농림축산식품통계연보ㆍ2020)에 따르면 2018년 173만 마리에서 2019년 204만 마리로 31만 마리가 늘었다. 한우(311만→323만 마리), 말, 돼지는 물론이고 인구(5,178만 명ㆍ전년 대비 15만 명 증가)보다 더 늘었다.

개의 번성은 그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넷플릭스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미국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 시리즈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개봉한 ‘보스 베이비 1편’은 어른들에게 아기를 공급하는 ‘아기 회사’(Baby Corp) 임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반 가정에 위장 파견된다. 어른들이 강아지에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아기 회사가 시장점유율(출생률) 경쟁에서 강아지 회사에 밀리게 된 상황을 바로잡으려 동분서주한다. 보스 베이비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아지 회사의 새 강아지 출시를 막아낸 뒤 형제애를 확인하고 형(티모시)의 가족에 합류하는 ‘해피 엔딩’ 스토리다. 미국 가정에서 반려견의 위상이 인간과 같아졌음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저출산ㆍ고령화, 가족해체로 한국에서도 반려견 위상이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반려견을 ‘우리 아기’, 견주가 스스로를 ‘개 아빠’니 ‘개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반려견 시장도 매년 커지고 있다. 네 집 가운데 한 집꼴로 반려견을 키우면서 2018년 2조8,900억 원이던 관련 시장이 2020년 5조8,000억 원대로 성장하고, 올해는 6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개 식용 금지 검토를 언급하고,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펫 프렌들리’ 행보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는 반려견 양육비를 낮추기 위해 “동물병원의 진료항목과 진료비를 표준화하고, 이용자가 가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공시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누군가를 무시할 때의 ‘사람을 개, 돼지로 취급한다’는 표현에서 개는 빠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발언 사과 직후,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와 그의 캠프는 ‘사과와 사진이 겹친 건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해명했다. 그 해명이 맞겠지만, 반려견을 자식과 다름없게 여긴다면 사과(謝過)의 뜻이 담긴 사과를 준 게 잘못은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개를 ‘반려의 대상’으로 볼 건지, 여전히 식용 가능한 가축으로 여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개에게 사과를 준 행동에 대한 판단도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에 대한 판단이 메시지 전달 방식에만 모아져선 안 된다. 전달 방식이 세련돼도, 내용은 돼지 취급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발 사주, 대장동 사건, 특별활동비는 물론이고 기본소득, 부동산정책 등을 둘러싼 유력 후보의 공방을 듣다 보면 누군가는 거짓말하는 게 틀림없다. 대선 정국에서 검찰과 공수처가 진행 중인 수사를 둘러싼 공권력 남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건전한 상식과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누가 거짓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면, 바로 그가 시민을 돼지 취급하는 사람이다.

선거 운동은 후보와 유권자의 대화다. 대화의 목적은 적절한 의사결정을 위한 정확한 정보전달이다. 문제는 화자가 거짓말을 할 때다. 이때 믿을 건 듣는 이의 올바른 판단이다. 개와 사과가 함께 찍힌 사진이나 여배우 논란에 흥분하는 대신, 번드르르한 말속의 모순과 탐욕을 가려내야 한다. 2017년 투표권을 잘못 행사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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