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체를 되살릴 수 없다" 대화 압박
27일 EU-이란 협상자 '중간대화' 나서
대화 무산 시 군사 행동 나설 가능성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되살릴 수 있을지 보려는 노력이 ‘결정적 국면’에 있다.”
미국의 대(對)이란 협상팀을 이끄는 로버트 말리 특사는 25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양측의 협상이 4월 이후 단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란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최후 통첩’이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제재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며 버티고 있다. 이견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외교가 아닌 ‘군사 대응’이란 강경책을 꺼내 들 가능성도 조금씩 커지면서 이란 핵합의 복원 시계(視界)도 한층 더 어두워지는 분위기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말리 특사는 “우리(미국)는 여러 달에 걸쳐 협상 공백기를 보냈다”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이란의 이유는 점점 더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 창구는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시체를 되살릴 수는 없다”는 경고성 발언도 쏟아냈다. ‘어느 시점’에서는 이란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아예 핵합의 복원을 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미국의 인내가 길지 않음을 거듭 강조하며, 이란을 상대로 조속한 협상 복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이란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일방적 탈퇴로 파기된 핵합의를 되살리기 위해 올해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본격적 협상을 시작했다. 핵합의 당사국인 6개 나라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하는 ‘간접 방식’이었다. 그러나 6차례 회담에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이마저도 6월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이슬람교 원리주의자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되며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다.
물론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다. 지난 반년간 때로는 유럽에서, 때로는 이란에서 협상 재개를 염두에 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협상 전초전 격인 물밑 대화 움직임은 한층 구체화된 상태다. 이란 측 핵합의 수석 협상자인 알리 카니 외무부 정무차관이 27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 엔리케 모라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차장을 만날 예정이다. 모라 차장이 주요 6개국과 이란 간 협상을 조율하는 실무자인 만큼, 이번 ‘중간 과정’을 통해 대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다만 이번 만남이 빈에서 열리는 ‘본 게임(핵합의 복원 협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대화의 본격 재개를 낙관할 수 있는 징후가 없어 현재로선 불투명, 그 자체다. 당장 이란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 보인다. “곧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는 언급만 반복할 뿐, 구체적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엿새 전에는 라이시 대통령이 “제재 해제는 상대국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대화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중단을 요구했다. 이달 9일에는 “20% 농축 우라늄을 120㎏까지 생산했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하기도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우라늄 농축 수준이 20%을 넘어가면 무기급으로 간주한다. 이란 핵합의는 우라늄 농축 농도를 3.67%까지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노골적으로 넘어서며 미국 등을 도발한 셈이다.
미국도 이미 ‘플랜 B’를 고민 중이다. 이란과의 대화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말리 특사는 “대화를 계속 거부하면, 핵합의 복원 협상 기회가 결국 무산되더라도 미국은 이란이 핵폭탄을 갖지 못하도록 막을 ‘다른 선택지(other tools)’를 사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전히 외교적 노력을 선호하지만, 미국과 동맹국이 또 다른 수단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란이 진로를 바꾸지 않을 경우, 다른 선택지로 전환할 준비가 돼 있다"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13일 발언과 궤를 같이 하는 일종의 경고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미국이 핵합의 복원에 실패할 경우,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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