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 영화 '아네트' 리뷰
헨리 맥헨리(애덤 드라이버)는 좀처럼 웃지 않는 코미디언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지만 때론 뒤틀린 자아를 드러내는 게 전문인 1인극 배우처럼 보인다. 왜 코미디언이 됐냐는 질문에는 “살해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유일한 방법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죽인다’는 표현을 지나치게 자주 쓴다.
안(마리옹 코티야르)은 오페라 가수다. 무대에서 계속 죽는다. 그는 헨리에게서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6명의 여성이 헨리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뉴스를 꿈에서 본다. 헨리가 자신을 죽이는 악몽도 꾼다. 안은 헨리와 사이에서 딸 아네트를 낳는데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뀐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우린 서로 아주 많이 사랑해’라고 노래하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이 뿜어내는 사랑스런 에너지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네트가 태어난 뒤,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두 주인공처럼 안은 최고의 오페라 스타가 되고 헨리는 퇴물 코미디언이 된다. 둘은 딸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나고, 안은 폭풍우 속에서 헨리와 말다툼을 하다 바다에 빠진다.
27일 개봉한 ‘아네트’는 프랑스의 거장 감독 레오 카락스가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40년 영화 인생에서 그가 처음 만든 뮤지컬 영화이자 영어 영화다. 올해로 결성 54년차인 아트팝 밴드 스파크스가 먼저 음악을 만든 뒤 카락스에게 연출을 제안하면서 제작이 시작됐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종종 인용해 가사를 썼던 밴드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해서인지 ‘아네트’는 가끔 셰익스피어의 비극 같은 인상도 준다.
‘아네트’는 ‘홀리 모터스’에 비해 훨씬 또렷하고 대중적인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특히 뮤지컬 영화 마니아 사이에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만하다. 많은 대사가 노래로 전달되는 뮤지컬이지만 화려한 군무는 찾아보기 어렵고 시종일관 음울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현대 오페라와 판타지의 요소도 있다. 안의 사망 후엔 사실상 헨리를 중심으로 한 1인극에 가까워진다. 심지어 딸 아네트는 대부분 배우가 아닌 마리오네트 인형을 통해 묘사돼 인형극을 보는 듯한 착각도 안긴다.
카락스 감독은 ‘아네트’를 “좋은 아빠가 되고자 했던 나쁜 아빠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 영화는 기묘한 뮤지컬인 동시에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어린 딸을 착취하는 나쁜 남자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심리극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딸에게 바친다고 했는데, 그와 딸은 영화 도입부에 잠깐 등장한다.
헨리는 심연을 들여다보며 그 속으로 추락하고픈 충동을 떨쳐내지 못해 타락하고 만 나약한 괴물이다. 자신을 혐오하면서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헨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타고난 아네트를 이용해 큰돈을 벌지만, 꼭두각시로 살던 아네트는 마지막 공연에서 아빠의 실상을 폭로한다. 동화 ‘피노키오’의 주인공처럼 사람으로 변신한 뒤 강렬한 엔딩을 연출하기도 한다. 카락스의 최고작이라 하긴 어렵지만 그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예리한 연출력이 무뎌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