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부족으로 전화는 안 터지고, 주유소는 폐쇄
의료기기 가동할 전력 부족... 환자 치료도 힘들어
갱단, 연료 터미널 가로막고 금품갈취·납치 자행
정국 혼란에 아이티 시민들 불만 폭발... 시위 확산
현직 대통령 암살, 대지진, 갱단 활보 등으로 시름에 빠진 아이티의 혼란상이 연료 고갈까지 겹치면서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무법천지 상태에서 아이티를 장악한 갱단들이 연료 공급을 가로막고 있어 치안 위기마저 심화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2주 넘게 연료 공급이 중단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지국 운영에 필요한 연료가 부족해 전화 연결마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주유소 무더기 사태도 빚어졌다. 디지셀 아이티 석유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지난주 전국의 1,500개 주유소 중 150곳의 연료가 고갈됐다"고 밝혔다.
연료난은 급기야 인명 피해 위협마저 낳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에 위치한 생데이미언 소아병원은 인공호흡기 등 의료장비 가동에 필요한 전력이 사흘치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고 WP는 보도했다. 병원 관계자인 덴소 게이는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며 "의료기기를 가동할 전기가 고갈되면 새로운 환자를 돌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이날 "연료부족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응급치료가 필요한 수백 명의 여성과 아동이 숨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료 대란의 배경에는 갱단이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주요 연료 터미널은 마르티상·라 살린느·시테 솔레이유 같은 갱단의 근거지에 위치해 있다. WP는 "일부 갱단이 지나가는 연료 트럭을 막고 금품을 갈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갱단에 의해 트럭 운전사들이 납치되는 일도 빈번하다. 유니세프는 "현지 공급업체가 수도 인근의 병원들에 1만 갤런(약 3만7,854L)의 연료를 공급하는 계약을 확보했다"면서도 "많은 트럭 운전사가 납치 위험 때문에 연료 수송을 회피한다"고 밝혔다. 치안 불안 상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티 갱단들의 장악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대통령이 암살되고, 8월에는 대지진이 발생하는 등 정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고 갱단들이 창궐했는데, AP통신은 "현재 갱단이 아이티 수도의 40%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티 비영리기구 인권분석연구센터(CARDH)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올해 1∼9월 아이티에서 외국인 29명을 포함해 최소 628명이 납치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16일 미국과 캐나다 선교단 17명을 납치했던 갱단 '400 마우조'는 석방 조건으로 총 1,700만 달러(약 200억 원)를 요구한 바 있다.
아이티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 좌절은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18일 아이티 대중교통 운전기사 등 노동자들은 치안 불안에 항의하며 전면 파업 시위를 선언했다. 21일에도 심각한 연료 부족과 정국 불안정 등을 이유로 아리엘 앙리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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