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이 두려워" 여성과 아이들 노리는 강간·인신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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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이 두려워" 여성과 아이들 노리는 강간·인신매매

입력
2021.10.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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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명인간이 된 아이들, 로힝야
2017년 대학살 피해 방글라 난민촌으로?
피란 땐 군경 집단강간 직면했던 여성들?
난민촌서도 인신매매·강제결혼 등 피해
아동은 최소한의 교육 기회마저 박탈돼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한 로힝야족 여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월드비전

"아기들을 엄마한테서 떼어 불구덩이 속으로 던졌어요. 남자애들은 소년병이라며 칼로 난자했고 잘린 몸은 불에 태웠어요."

자히다(가명·13)양은 4년 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광경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미얀마 라카인주의 고향 라티다웅 지역을 떠나기 전 자히다양은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미얀마군이 로힝야 사람을 마구 죽인다는 소식이 들불처럼 번졌다. 자히다양 가족과 이웃들은 낮엔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다니다가 어둠이 내리면 강가 갈대밭에 몸을 숨겼고 아예 숲으로 들어가 여러 날 묵기도 했다. 그러다가 돌아간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을 순 없었던 자히다양 가족은 다른 로힝야 사람들처럼 인접국인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기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강 건너 마을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를 모셔 오겠다'고 갔던 자히다양 또래의 친척 2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무릎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할머니만 군인들이 떠난 뒤 겨우 구출할 수 있었다. 국경까지는 직선 거리로 50㎞였지만, 학살자의 눈을 피해 가는 여정은 더뎠다. 일행을 몇 개 무리로 나누고, 숲속 오솔길과 강 제방을 따라 밤낮없이 이레를 걸어서야 겨우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미얀마 군인들에게 발각돼 총구 앞에 섰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자히다양 가족은 가진 돈과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내주고 목숨을 건졌지만, 동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숱하게 숨어서 지켜봐야만 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여성과 어린이의 희생이 특히 많았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의 8번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4년째 살고 있는 자히다양은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사람이 찢기고 태워지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눈앞에서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집단강간 피해 난민촌 와도…여성은 사면초가

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의 로힝야 난민 캠프 임시학습센터 세션에 로힝야족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월드비전

무국적자는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지만, 그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의 처지는 더욱 비극적이다. 단일 민족으로는 세계 최대 무국적 집단으로 꼽히는 로힝야족의 경우에도 여성과 어린이는 손쉬운 '인종 청소' 대상이 됐다. 한계 상황에 놓인 무국적자 집단에서 생활하는 탓에 집단 내 학대와 폭력에도 더욱 취약하다.

로힝야족 여성은 2017년 피란 당시 미얀마 군경의 집단강간·성폭력에 노출됐다. 공권력에 의해 방임된 채 성범죄가 자행된 것이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이듬해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는 4만8,000여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임산부 대다수가 군경 강간의 희생자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지워졌거나 출생 이후 고아가 됐다. 버려지지 않았더라도 평생 환영받지 못할 존재로 살아야 할 처지다.

사선을 넘어 도착한 난민촌도 무국적 여성과 아동에겐 충분히 안전한 쉼터가 아니다. 무국적자는 일반 난민과 처지가 다른 탓이다. 국적이 있는 난민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국제법의 보호를 받지만, 무국적자는 그럴 기회마저 없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족을 난민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선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있지만, 이를 제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국경지대와 난민캠프에서 활개치는 일부 브로커들은 1인당 20만 타카(약 275만 원)에 로힝야족을 유흥업소·매춘사업이나 농장·공장에 팔아넘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잔나타라(가명·13)양은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유로 어린 딸을 아내감으로 파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는 말로 이들의 처지를 전했다. 15세에 난민캠프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은 파르비나(가명·18)양은 "임신했을 때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후회가 된다"며 "조혼의 위험성과 어린 신부의 고통을 알려 모든 여성들이 18세 성인이 된 후 결혼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생리를 시작하면 절대 밖에 나가선 안 된다"는 잔나타라양의 말처럼, 첫 월경을 하는 순간부터 성인이라 규정하는 로힝야족 종교적 관습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콕스바자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정화 월드비전 국제구호 취약지역사업팀 과장은 "인신매매의 첫 번째 타깃이 로힝야족 여성 아동과 청소년"이라며 "남편이 될 사람에게 딸을 보내는 게 안전하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성과 아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있다. 지난해 중앙조정기관인 유엔 분야간 조정그룹(ISCG)의 조사 결과 콕스바자르 캠프 내 로힝야족 여성 중 42%가 '집안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신체·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캠프가 봉쇄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소한의 교육도 못 받는 로힝야 아이들

방글라데시 치타공주 콕스바자르시 로힝야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로힝야족 파르비나(가명)양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파르비나양은 15세에 아이를 낳았다. 월드비전

무국적 로힝야 아이들은 다른 삶을 모색하기도 어렵다. 최소한의 교육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교육'은 금기어다. 정착을 우려하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방침 탓이다. 미얀마에서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로힝야 아이들은 캠프에 온 지 4년째인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국제기구와 민간단체가 캠프에서 임시학습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어와 버마어, 태양열 기기 수리 및 재봉 기술 등을 가르치는 수준이다. 생존에 필요한 언어와 허드렛일 정도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기술로 교육 내용이 한정된 셈이다. 이대로라면 나중에 정규 교육이 이뤄져도 학령기를 놓쳐버린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7년부터 콕스바자르시에 유입된 로힝야족 난민 신청자는 지난달 기준 90만2,947명에 이른다. 미얀마 송환, 바산차르섬 강제 이주 등에 대한 두려움에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까지 고려하면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무국적자인 이들의 78%가 여성과 17세 이하 아동·청소년이다.

자히다양은 "식량 배급이 안 나와 굶게 된다고 해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며 "미얀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에선 꿈도 꿀 수 없었던 학교(센터)에 갈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며 "학교가 다시 문을 열면, 열심히 공부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유지 기자
영상제작= 현유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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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사람들, 무국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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