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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속 강화유리의 비밀

입력
2021.10.21 19:0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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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고재현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 고유의 놀이 문화를 지구인들이 즐기는 세태가 무척 생경하면서도 즐겁다. 드라마 속 게임의 결과는 참혹하지만 그중 징검다리 게임이 유독 눈길을 끈다. 허공 위 눈앞에 놓인 두 유리 중 하나는 일반유리, 다른 하나는 강화유리로, 50%의 확률이 점프하는 참가자의 목숨을 좌우한다. 성기훈(이정재 분)을 포함한 세 명의 참가자를 살린 것은 무작위적으로 배치된 강화유리였다. 보기엔 그저 일반유리처럼 투명해 보이는 강화유리, 그 속에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일반 유리가 깨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유리 위로 사람이 뛰어 착지하면 압력을 받은 곳을 중심으로 유리가 눌리며 휘어진다. 이때 눌린 곳을 중심으로 유리는 양쪽으로 늘어나는데 특히 바깥쪽이 제일 심하게 늘어난다. 유리가 감당하는 한계를 초과해 늘어나면 유리는 부서지고 만다. 겉으론 매끈하게 보여도 유리 표면에는 작은 거칠기나 흠이 많이 존재한다. 충격이 가해지면 이 흠집을 중심으로 파손이 발생한다. 유리를 강화시키는 관건은 결국 유리가 깨지는 인장 강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놓인다.

강화유리의 제조 과정을 보자. 일반 유리를 고온으로 올려서 부드럽게 만든다. 온도가 올라가면 물체는 팽창하기 마련이다. 평편한 유리의 양면에서 차가운 공기를 불어 식히면서 온도를 낮추면 찬 공기가 닿는 표면의 유리는 빨리 수축하고 상대적으로 뜨거운 내부의 유리는 표면에 비해 팽창한 상태를 유지하며 식는다. 즉 양 표면의 수축된 유리가 내부의 팽창된 유리를 감싸는 형국이다. 단단하게 압축된 표면엔 결함도 별로 없고 충격에 대한 강도도 높아 일반 유리보다 4~5배 이상 강한 충격에 견딜 수 있다. 가령 표면이 5 정도로 늘어나야 깨지는데 마이너스 20 정도로 수축된 표면은 깨질 때까지 25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성기훈을 살린 유리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강화유리가 깨진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강화유리가 깨진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비유해 보자.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는 대개 전면의 사람들이 스크럼을 짠다. 이들은 팔과 팔을 단단히 끼고 간격을 좁혀 공권력으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한다. 하지만 스크럼 안쪽의 시위대는 부글부글 끓으며 언제라도 뛰쳐나가려는 활발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강화유리에 대한 적당한 비유가 된다. 반면에 일반 유리는 시위대 모든 인원이 위치에 무관하게 비슷한 간격으로 적당히 서 있는 상태로 비유된다. 이들을 해산시키려 시위대의 가운데를 파고드는 진압 경찰에 대해 어느 쪽이 더 강고히 버틸 수 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강화유리가 외부 충격에 강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 속 강화유리는 마지막 생존자들을 살렸지만 우리의 일상에선 자동차용 유리나 건축용 자재로 활용되며 유리의 활용도를 크게 높여 왔다. 특히 충돌 등으로 깨질 때 날카롭고 큰 조각으로 깨지는 일반 유리와 달리 강화유리는 자잘하고 뭉툭한 조각들로 파손되어 신체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얇은 강화유리를 만들 때는 표면 냉각법 대신 유리 표면의 이온을 치환해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스마트폰의 얼굴인 스크린의 유리, 특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폴더블폰의 화면 역시 이런 강화유리를 활용해 접힐 때의 충격을 감당한다.

인류 문명은 다양한 물질의 발견과 개발, 혁신의 역사를 포함한다. 고대의 불투명하고 투박한 유리로 출발해 중세의 투명한 유리, 근현대를 거쳐 매끈하고 강한 유리로 재탄생하며 유리는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 목록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 전자 제품이나 건축물의 얼굴 역할을 넘어 다양한 첨단 스마트 기능까지 담당하며 때론 자유롭게 휘어지기도 하는 유리의 다음 변신이 기대된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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