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아동 "음식물 먹고 토했다" PTSD 진단
교사·원장 혐의 부인… 구청은 뒤늦게 "재검토"
전문가 "물증 적은 정서학대, 아동 진술 중요"
서울 송파구의 대형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됐다. 지난해 당시 4세였던 원아가 밥을 그만 먹겠다고 하자 남은 밥과 반찬을 한데 뭉쳐 강제로 먹인 혐의다. 피해아동 부모는 아이가 그 일로 인해 중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고 강박 증세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교사와 유치원은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청 아동학대전담팀에 사건 배당
20일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아동학대전담팀은 A유치원 교사 B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올해 8월 30일 송파경찰서를 통해 해당 사건 신고를 접수했고 지난달 7일 서울경찰청으로 사건을 넘겼다. 서울경찰청은 이달 17일 같은 내용으로 B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원생이 400명가량인 A유치원은 지역에서 유명한 교육기관이다.
고소 내용에 따르면 송파구 소재 유치원에 다니는 장모(5)양은 올 8월부터 어머니 이모(34)씨에게 지난해 담임 교사였던 B씨가 자신에게 밥을 억지로 먹인 일이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장양은 "밥을 그만 먹겠다고 하니 B 선생님이 오리고기, 부추, 김치, 밥을 모아 어른 주먹만해진 것을 통째로 먹였다"라며 "못 참고 화장실로 뛰어가 세면대에 토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장양이 지난해 있었던 '강제 식사' 경험을 뒤늦게 밝힌 이유에 대해, 가족들은 올해 이 유치원의 또 다른 교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양이 엄마에게 "작년 담임 선생님(B씨)도 사과해야 된다"면서 자신의 피해 사례를 꺼내놨다는 것이다.
이씨는 딸 장양이 최근 신경정신과에서 중증 PTSD 진단을 받았고 강박증도 심해졌다면서 지난해 학대 피해에 따른 정신적 충격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딸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밥을 남겨도 되는지 계속 묻고, "힘을 줘도 기억이 부숴지지 않아" "자꾸 생각나서 슬퍼" 등 부정적 감정을 자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딸이 그동안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계속 등원했지만 이젠 그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B씨는 지난해 상황에 대해 "김치와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어보라고 했고, 아이가 식탁에 음식을 뱉기에 화장실에 가서 손 씻으라고 한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교사는 혐의 부인… 구청 "재검토하겠다"
장양 가족은 A유치원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씨 등이 수차례 아이의 진술을 유치원 원장에게 전달했지만 학대 의심 신고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유치원 교직원은 아동학대를 인지하거나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수사기관에 알려야 하는 '신고의무자'인데도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은 관할 지자체의 조치에도 불만을 나타냈다. 지방자치단체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아동학대 관련 신고를 접수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하는데, A유치원을 관할하는 송파구청이나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원장이 직접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생 및 동료 교사 면담 등 조사 과정 없이 학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 장양 가족의 주장이다. 이씨는 "구청 담당자가 딸의 진술 내용도 모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A유치원 원장은 "장양 진술을 전달받고 조사했지만 학대를 의심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면서 "피해 아동이라면 이곳에 계속 다니기 어려울 텐데 장양은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반면 송파구청은 장양 가족의 지적을 수긍하는 입장을 보였다. 구청 관계자는 "추려진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구청 아동복지심의위원회에서 이번 사례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동 정서학대는 사건 특성상 객관적 입증이 쉽지 않은 만큼 보육시설, 지자체 등 일선 기관이 아동 진술 청취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변주은 변호사는 "물증이 없더라도 피해 아동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라면 학대로 인정할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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