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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사가세요. 대신 값은 톡톡히 치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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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사가세요. 대신 값은 톡톡히 치르셔야 합니다”

입력
2021.10.22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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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사고 파는 '매몽업계' 그린
장편소설 '옥토' 규영 인터뷰

규영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온라인 마케터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글과 그림, 판매까지 도맡는 전천후 출판인의 자양분이 됐다. 한지은 인턴기자

규영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온라인 마케터 일을 하다가 작가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글과 그림, 판매까지 도맡는 전천후 출판인의 자양분이 됐다. 한지은 인턴기자


흔히 쓰는 관용구 중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자는 동안 꾸는 꿈은 잠재의식의 발로로 여겨지기도 하고,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하나의 복잡한 세계로 해석된다. 그런데 만일, 이 꿈이 정말로 현실의 ‘운’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그래서 흉몽과 길몽을 대신 꿔주고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 직업이 따로 있다면?

규영 작가의 장편소설 ‘옥토’(폴앤니나)는 이런 상상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꿈을 사고파는 ‘매몽 업계’가 존재하고, 꿈을 파는 사람들은 역술인처럼 ‘산몽가’라는 직업인으로 인정 받는다는 설정이다.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나 규영(36) 작가는 “실제로 내가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쓰게 된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의 배경은 평창동의 한 꿈집. 매몽업계 최고의 정예 산몽가들이 일하는 곳이다. 평창동 꿈집의 4대 주인이자 최고의 적중력을 자랑하는 산몽가 마담을 중심으로 연애와 결혼 꿈 전문 산몽가 나비, 취업꿈 전문 산몽가 개미, 그리고 흉몽을 대신 꿔서 불행을 막아주는 산몽가 고양이 등, 최고의 산몽가들이 모인 이곳에 신참 산몽가 옥토가 들어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장편소설 '옥토'를 쓴 규영 작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장편소설 '옥토'를 쓴 규영 작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6년 전이다. 평소 좋은 꿈을 자주 꿔 지인들에게 꿈을 팔곤 했고, 정말 좋은 꿈을 꾼 어느날 이를 지인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꿈을 파는 게 운을 파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를 소설로 써보기로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양각색 다채로운 꿈들은 작가가 실제 꾼 꿈과 상상력이 만난 결과다.

“평소에도 꿈을 생생하게 꾸는 편이에요. 푸른 바다에서 돌고래 등에 업혀 헤엄친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꿈을 많이 꿔요. 그렇게 꾼 꿈을 메모해뒀다 실제 출판돼 있는 꿈 해설서를 참조해 살을 붙였고요. 소설에도 등장하는 2세기 리디아 출신의 아르테미도로스가 쓴 ‘꿈의 열쇠’도 많이 참조했어요.”

꿈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이다 보니 마냥 동화적일 것 같지만, 실은 웬만한 성인 소설보다 더 ‘현실적인 욕망’을 다룬다. 정치인과 기업 총수, 연예인과 부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꿈을 사간다. 결국 ‘돈만 있다면’ 행운과 불행을 택할 수 있는 셈이다. 작가는 “판타지기는 하지만 결국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규영 작가는 대학에서 본래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 대행사 등에서 온라인 마케터로 일했다.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글에 대한 소망이 점차 부풀었고, 습작과 회사 생활을 병행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뒤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직접 그린 그림책을 비롯해 총 6권의 책을 펴냈고 그 중 두 권이 기성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됐다. 특히 이번 책은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독자를 모집, 이후 정식 출간되는 과정에서 영화 ‘부산행’의 제작사인 레드피터로에게 영상 판권까지 팔렸다.

규영 장편소설 '옥토'

규영 장편소설 '옥토'


꿈이라는 소재부터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정식출간으로 이어진 과정까지, 여러모로 지난해 ‘올해의 책’을 휩쓸고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겹친다. 정작 규영 작가는 “(달러구트를) 일부러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 책을 보고 나면 용기를 잃고 창작을 포기하게 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꿈’이라는 같은 소재에서 얼마나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탄생했다.

얼마 전 한 유력 대선 후보가 손바닥에 ‘王(임금 왕)’자를 적고 등장해 논란이 됐다. 사주팔자, 점, 관상 등 각종 역술·무속 행위에 현실 정치가 휘둘리는 것을 목격해온 나라에서, 꿈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소설은 판타지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꿈의 역할을 어디까지라고 생각할까? 마지막으로 물었다.

“현실을 바꾸는 정도의 위력을 가진 꿈이 실제 있다면, 그건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봐요. 솔직히 시민으로서, 그건 박탈감이 너무 크잖아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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