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부실했던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넷플릭스를 휩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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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부실했던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넷플릭스를 휩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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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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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OTT 세계 톱10에 한국 드라마 3개?
'오징어 게임' 부터 '마이 네임' '갯마을 차차차'까지
높은 자살률·분단·정(情) 등 한국적 특징 앞세워
보편이 된 특수…?"팬데믹으로 중요해진 연대"?
넷플릭스 담장 넘어... 독립 나선 제작사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어촌 내 작은 가게의 대청마루는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간판 등이 정겹다. tvN 제공

경북 포항의 작은 항구 마을 양포리.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팬 세 할머니가 항구에 쭈그리고 앉아 오징어 배를 가른다. 마을회관에선 동네 아이와 할머니가 모여 노래자랑을 하고, 마을의 큰 어른인 감리(김영옥) 할머니가 숨을 거두자 주민들은 공동장을 치른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감리(김영옥) 할머니는 작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다. tvN 제공


21세기 어촌판 '전원일기'에 외국 시청자들이 왜?

tvN 인기 주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21세기판 '전원일기' 같다. 한국의 작은 어촌에서 삶을 공유하는 소박한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이 드라마는 대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인기 순위 1위(18일 기준·현지시간)를 달리고 있다. 발리 같은 낭만도 하와이 같은 화려함도 없는 한국의 외딴 어촌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를 외국 시청자들은 왜 눈여겨볼까. 본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만난 필리핀의 아비가일씨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우울한 상황에 넷플릭스에 어두운 드라마가 많은데, '갯마을 차차차'의 공진 바다를 보며 지친 한 주를 힐링하고, 마을 속 좋은 사람들을 보며 행복과 배움을 얻는다"며 "이 드라마에 이렇게 빠질 줄 몰랐다"고 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관련 외국 시청자의 평. SNS 캡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 참가자들이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4∼16일 두바이에서 개최한 한국관광 홍보행사 '필 코리아 2021'의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서 외국인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다. 딱지치기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해 요즘 새삼 인기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오징어 게임' 계기로 주류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 대중문화 시장의 판도를 확 뒤집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 천하다. 이날 세계 OTT 소비량을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이 27일째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마이 네임'(4위)과 '갯마을 차차차'(7위)까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스릴러와 액션 누아르를 비롯해 시골 로맨스까지 인기다. K팝뿐 아니라 힙합,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노래가 영미권 노래를 줄줄이 제치고 미국 빌보드 인기곡 차트 톱10을 휩쓴 것과 같은, 그간 보지 못했던 성과다.

드라마 '마이 네임'에서 경찰에 잡입한 윤지우(한소희). 남성의 전유물로 통했던 액션 누아르 장르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독일 등에서 넷플릭스 인기 순위 톱3(18일 기준·현지시간)에 들며 인기다. 넷플릭스 제공

북미와 유럽에서 그간 마니아 장르로 여겨졌던 한국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계기로 주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외신은 이 흐름을 깜짝 호황이 아닌 돌풍의 신호탄으로 진단했다. 영국 BBC 방송은 "'한국 문화 쓰나미'의 물결"이라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창작자들은 미국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고 평했다. 영화 '기생충'이 예술적으로 조명받고, '오징어 게임'으로 신드롬까지 일으키면서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에서 연간 가장 많이 재생된 작품으로 조사됐다. tvN 제공


그래픽뉴스부=송정근


언어 장벽·작은 스케일? '한국적 차별화'

넷플릭스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블룸버그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의 회당 제작비는 237만 달러(28억 원)로, '더 크라운'의 회당 제작비 1,000만 달러(119억 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가 OTT에서 미국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한국적 차별화'다.

①한국 현실을 콘텐츠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②정(情), 즉 공동체 판타지를 부각하며 ③인물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것, 크게 세 가지다. 세계 유일의 분단('사랑의 불시착')과 경제 불평등과 높은 자살률('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후미진 골목 및 더불어 사는 삶('갯마을 차차차'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대한 향수 등 한국적 특성으로 이야기를 색다르게 끌고 가는 방식이다. '조선 좀비'를 앞세운 '킹덤' 시리즈 등 최근 3년 새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다. 김종훈 CJ ENM IP사업본부장은 "K팝 열풍 등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 드라마들이 한국적 소재와 감성을 진하게 녹여내 OTT에서 주류를 이뤄 온 미국 블록버스터 드라마와 차별점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국적 특수성은 팬데믹과 난민 문제 등과 맞물려 시대적 보편성을 얻는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적 정서인 정은 다른 말로 하면 연대고, 그 연대는 팬데믹과 난민 문제 등이 심각한 전 세계의 시대정신이 됐다"라고 진단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인기로 해외에선 주인공인 박새로이(박서준·왼쪽)의 밤톨 머리 스타일을 따라하기도 했다. JTBC 제공


"드라마에 들어간 느낌" 북미와 유럽 재조명

한국 드라마는 그간 북미와 유럽에서 이야기 밀도가 부족하다는 촌평을 받아왔다.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폄하됐던 한국 드라마의 섬세한 감정 표현은 다시 조명받고 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지난해 낸 '글로벌 VOD 서비스의 한류 영향력' 발표문을 보면, '이태원 클라쓰' 등을 본 미국과 프랑스의 시청자는 "한국 드라마의 촬영 방식은 미국 시리즈물보다 차가운 느낌이 덜하다" "한국 드라마는 관찰자가 아닌 극중 인물 중 한 명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고 흥미로워했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평론가인 박생강씨는 "오징어 게임'에서 남북 소녀가 혈육 같은 정을 보여주는 등 소위 '한드'는 다른 드라마보다 이야기가 더 뜨겁다"며 "그 한국적 특성에 '갯마을 차차차' 같은 전원극 로맨스에도 동성애자인 학교 여선생의 사랑 등 소수자 이야기를 함께 녹이면서 보편성과 차별성을 함께 가져가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23일 첫 방송될 드라마 '지리산'에서 지리산 레인저 역을 맡은 전지현(왼쪽)과 주지훈. 올 하반기 블록버스터 기대작인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다. 에이스토리 제공


'전지현·송혜교 드라마'의 탈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열풍에 넷플릭스는 땔감이 됐다. 하지만 요즘 국내 일부 제작사에선 '탈 넷플릭스'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드라마가 세계적 흥행을 해도 지식재산권(IP)은 넷플릭스가 가져가 제작사가 작품 흥행 시 추가 이익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지현이 출연하고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써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지리산'(23일 방송)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다. 제작사 에이스토리가 '지리산'의 판권을 넷플릭스에 팔지 않았다. 대신 중국 OTT인 아이치이와 tvN에 각각 해외 온라인 유통(200억 원 후반대)과 국내 방송권(208억 원)만 따로 팔아 제작비를 거둬들였다. 송혜교 주연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제작한 삼화네트웍스도 넷플릭스가 아닌 PCCW 뷰클립(싱가포르)과 해외 유통 계약을 맺었다.

한류스타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다. 삼화네트웍스 제공

20년 넘게 드라마 제작을 해 온 제작사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대형 OTT들은 총 제작비에 10~15%를 더 얹어주지만 IP를 가져가는 게 계약의 조건"이라며 "자본력이 있는 대형 드라마 제작사나 한류스타가 출연하고 작가 등 제작진의 명성이 높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제작사는 IP를 넘겨주지 않아도 되는 OTT와 계약해 수익 구조를 개선하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중소형 제작사는 제작비 확보가 관건이라 100% 사전 투자로 제작비를 전액 지급하는 넷플릭스와의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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