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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전 한은 총재 별세… 'YS 정부 경제 공과(功過)' 떠안은 경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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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전 한은 총재 별세… 'YS 정부 경제 공과(功過)' 떠안은 경제통

입력
2021.10.17 16:16
수정
2021.10.17 18: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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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부 경제부총리-한은 총재 지내며
금융실명제 도입, 한은 독립 기여
IMF 구제금융에 서명도

이경식(앞줄 맨 오른쪽) 한국은행 총재와 임창열(가운데) 경제부총리가 1997년 12월 3일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정책의향서에 서명한 후 캉드쉬 IMF 총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경식(앞줄 맨 오른쪽) 한국은행 총재와 임창열(가운데) 경제부총리가 1997년 12월 3일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정책의향서에 서명한 후 캉드쉬 IMF 총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이경식씨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3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이 전 총재는 1957년 고려대 상대를 졸업한 뒤 한은 조사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1971년), 체신부 차관(1976년) 등을 거쳐 대우자동차 사장(1987년), 한국가스공사 사장(1991년) 등 기업 대표도 역임했다.

이후 문민정부에서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93년), 한은 총재(1995~1998년)를 잇따라 맡으며 김영삼 정부의 대표 경제 관료로 꼽혔다. 부총리 시절에는 한은 입행 동기였던 김명호 당시 한은 총재와 호흡을 맞춰 금융실명제 정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부 경제정책의 공과 과를 고스란히 떠안은 인물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했다. 한은이 국회 IMF 환란 조사특위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이 전 총재가 이끌던 한은은 구제금융 신청 8개월 전인 1997년 3월 IMF 긴급자금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총재는 한은의 독립성과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97년 강경식 당시 부총리와 함께 한은의 은행감독 기능을 은행감독원으로 분리하는 대신 통화정책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마련했다. 당시 이에 대한 한은 내부 반발 여론으로 퇴임 직후 한은 강당에 역대 총재 초상화도 걸지 못했지만, 이 결정이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에 초석이 됐다는 평가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귀국한 뒤에는 경제인 친목 단체인 21세기 경영인 클럽 회장을 맡아 왔다. 빈소는 서울 성모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11시다.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이경식씨가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95년8월24일 한국은행 총재 취임식을 마친 뒤 기자회견 하는 이경식 당시 총재.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이경식씨가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95년8월24일 한국은행 총재 취임식을 마친 뒤 기자회견 하는 이경식 당시 총재. 연합뉴스


세종 =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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