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의 "PVC랩 금지" 후 2년... 깜박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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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의 "PVC랩 금지" 후 2년... 깜박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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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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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업체는 제외
전체 PVC랩 사용량 중 10% 정도만 줄어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21>PVC랩 Ⅱ


서울 신영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쥐포·호두. 모두 PVC랩으로 포장돼 있다. 물기가 없어 PE랩으로 포장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는 제품이지만 전통시장에서는 PVC랩이 널리 쓰인다. 환경부가 연매출 10억 원 미만의 업체는 PVC포장재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2019년 8월 26일 환경부가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

염소(Cl) 성분이 함유돼 재활용이 어렵고 다른 플라스틱의 재활용까지 방해하는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에 대한 사용을 그해 12월 25일부터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대체재가 상용화되지 않고, 식‧의약 안전과 연관된 의약‧건강기능식품, 상온에서 판매하는 햄‧소시지, 물기가 있는 축(고기)‧수산(생선)용 포장랩(농산물용 포장랩은 금지) 등 일부 제품의 포장재에 한정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2019년 8월 환경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폴리염화비닐(PVC)을 포장재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환경부 제공

이 보도자료를 철석같이 믿었던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마트나 전통시장에서 농산물·떡·반찬·공산품에까지 여전히 널리 쓰이는 PVC랩은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믿었다. 이에 따라 불법 사용과 단속 공백을 취재하던 중 정부로부터 "불법이 아니다"라는 뜻밖의 설명을 들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도 운영의 효율성과 영세업체 보호를 위해 PVC 포장재 금지 정책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와 연계해 매출 10억 원 미만에는 제한을 뒀다”고 말했다. 즉, 연 매출이 10억 원 미만의 상인들이 대부분인 시장, 중소 마트 등은 PVC랩 사용이 자유라는 것이다.

업계 수치 등을 토대로 추산해보니 환경부의 금지 정책 전후로 PVC랩 사용량의 고작 10%가량 줄어들었을 뿐이다. 보도자료만 보면 마치 대부분의 PVC랩이 퇴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반대이다. 적용 예외 규정이 적용 규정을 압도해 정책 자체의 실효성을 없애버리는 것, 우리 포장재 정책의 현주소이다.

배추ㆍ쥐포ㆍ호두까지 PVC랩으로 포장

서울 광장시장, 망원시장, 신영시장에서 PVC랩에 포장된 다양한 식료품들. 반찬이나 족발처럼 염분이 랩에 묻어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음식도 있지만, 채소·건어물·떡·견과류처럼 포장재에 묻어나지 않는 식품들도 전부 PVC랩으로 포장돼 있다. 이런 식품들은 재활용이 비교적 잘 되는 폴리에틸렌(PE)랩으로 포장할 경우 플라스틱을 땔감으로 태우는 '에너지재활용'에 쓸 수 있다. 이현지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양천구 신영시장, 마포구 망원시장을 찾았다. 서울에서 식료품을 취급하는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광장시장 내부 식료품 점포는 총 15곳이었는데, 모두 PVC랩을 사용하고 있었다. 신축성이 뛰어나고 쉽게 들러붙어서 포장이 쉽기 때문이다. 떡집(2곳), 한과집(5곳), 과일가게(2곳), 횟집(2곳), 반찬가게(2곳), 수산물 점포(2곳)였다. 매출 예외 규정이 없었다면, 수산물을 제외한 나머지 점포에서는 PVC랩을 사용할 수 없다.

망원시장 내부에는 식료품 점포 32곳 중 25곳이 PVC랩을 썼다. PVC 랩을 쓰는 축ㆍ수산물 점포는 10곳이었다. 신영시장은 72곳 중 42곳이 PVC랩을 썼고, 축ㆍ수산물 점포는 17곳이었다.


서울의 한 정육점에서 개량형 PE랩을 사용해 포장을 하고 있다. 비교적 재활용이 잘 되는 PE재질의 대체재가 개발됐으나 PVC랩이 여전히 널리 쓰이면서 판로 확보가 쉽지 않다. 김현종 기자

특히 시장에서는 개량형 폴리에틸렌(PE)랩으로 포장해도 큰 지장이 없는 제품에도 PVC랩을 사용했다. 과일ㆍ견과류ㆍ건어물ㆍ떡ㆍ과자 등이다. 이런 음식은 랩에 묻어나지도 않아서 PE랩을 사용할 경우 고형연료제품(SRF)으로 활용하는 에너지재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연 매출 10억 원 이상의 대형마트에서는 이미 이런 식품엔 개량형 PE랩을 사용하고 있다.

PVC랩이 축·수산물 등에 예외적으로 허용된 이유는 PVC가 접착력과 방담성(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성질)이 좋아서 물기가 있는 제품 포장에 유리하기 때문인데, 현장에서는 물기 없는 제품까지 방대하게 쓰이는 것이다.

상인들은 환경부의 PVC랩 금지 정책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영시장에서 농수산물ㆍ반찬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사용하고 있는 랩의 재질도 잘 모르고 PVC랩을 금지하고 있는 정책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대체재가 상용화된다면 얼마든지 보다 친환경적인 포장재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의 PVC포장재 금지 발표 이후 성능을 개선한 개량형 PE랩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넓은 예외 규정 때문에 여전히 PVC랩이 널리 쓰이면서 개량형 PE랩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10억 원 미만’ 업장, 전체 사용량 90%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 과일, 반찬가게 등이 줄지어 있다. 절반 이상이 PVC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현지 인턴기자

환경부는 PVC의 금지 필요성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18년 PVC랩에 대해 자원순환성 평가를 하며 "PVC랩 1kg당 염소 0.57kg이 포함돼 있다"며 "염소성분 탓에 다른 플라스틱의 재활용도 망치고 있다”고 결론 지었다.

비닐류는 화력발전 등의 땔감으로 쓰는 고형연료제품으로 사용하지만, PVC는 염소 함량이 높아서 불에 탈 때 재활용 설비와 작업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염소가 수소와 결합하면서 강한 부식성을 가진 염화수소가스(HCl·물에 녹을 경우 염산)가 되기 때문이다.


2018년 환경부는PVC랩 자원순환성 평가에서 PVC랩 1kg당 염소 약 0.57kg을 포함하고 있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환경부 제공

이에 따라 환경부는 PVC랩은 EPR제도에서 제외해 생산·판매자에게 재활용분담금을 부과하지 않고, 그 외 재질의 식품포장용 랩은 재활용분담금을 부과한다. PVC 외의 랩에만 재활용 의무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세업체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업체에 PVC랩 사용을 계속 허용하면서 정책이 꼬였다. 영업타격 등과 직접 관계가 없는 포장용 랩 사용까지 영세업체 보호의 명분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연 매출 10억 원 미만의 업체가 너무 광범위하다. PVC랩 업계에 따르면, 연간 국내 PVC랩 사용량은 약 1만5,000톤이며, 환경부의 금지 정책 이후 출고량이 10%가량 줄었다고 한다.

환경부는 지난해 연 매출 10억 원 이상 업체에서 사용한 PVC 포장재는 약 3,634톤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여기에는 랩 외에 의약ㆍ건강기능식품 포장재 등도 포함돼 있다. 환경부는 10억 원 미만 업체의 PVC 포장재 사용량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환경부 집계를 토대로 봐도, PVC 포장재 사용량은 별로 줄지 않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연 매출 10억 원 이상 업체의 PVC 포장재 사용량은 4,727톤이었다. 금지 정책 후인 지난해 사용량이 3,634톤이었으니, 금지 대상인 매출 10억 원 이상 업계조차 1,093톤(약 23.1%)밖에 줄지 않은 셈이다.

식품업계 관련 통계를 보더라도 대다수 업체들이 규제에서 빠져나간다. 음식점은 지난해 기준 93.7%가 연 매출 5억 원 미만이었다. 중국집ㆍ분식집 등 음식 배달을 시킬 경우 어김없이 PVC랩이 딸려오는 이유다.

또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음ㆍ식료품ㆍ담배 소매업체의 전체 매출액 중 약 47.1%(약 11조7,000만 원)가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업체에서 발생했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은 “영세업체 보호 목적이라는 제한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배달용기 등까지 대다수 업체들이 예외 적용을 받는다”며 “연 매출액 10억 원이 자원순환 촉진을 위해 충분한 기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PVC 관련 협회인 한국바이닐환경협회(KOVEC)는 "랩은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버리기 때문에 랩과 재활용은 큰 관련이 없다"며 "PE랩을 쓸 경우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플라스틱을 더 써서 폐기물양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PVC포장재 사용금지 예외대상은 올해 재질ㆍ구조 검토위원회를 거쳐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VC 건설자재는 또 다른 난관

PVC 건설자재와 관련한 논란도 있다. KOVEC에 따르면, 지난해 PVC건설자재 재활용률(신규 생산·수입량 대비 재활용량)은 24.5%였다. 2019년 페트(PET)병 재활용률이 80%였던 것에 비해 크게 낮다. 폐기물 배출량에 따른 재활용양은 집계되지 않고 있다.

계형산 목원대 신소재화학공학과 교수는 “PVC건설자재는 업체ㆍ제품 별로 기능에 따라 다양한 첨가제가 들어가서 소재가 섞이면 재활용이 어렵다”며 “같은 소재가 모이기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지만, 수집ㆍ선별을 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건설폐기물 수집ㆍ운반업체 관계자도 “콘크리트ㆍ철근 등은 선별이 쉽고 폐기물양이 많아 전부 재활용 업체로 넘기지만 폐 PVC 건설자재는 선별ㆍ운반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전부 매립 폐기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환 한국자원재활용협회 이사는 "건설자재는 사용연한이 길어서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최근과 달리 과거 플라스틱엔 인체에 유해한 가소제·중금속이 다수 함유돼 있었다"며 "대다수 재활용 업체들이 유해성에 대한 우려 탓에 건설자재 폐플라스틱은 되도록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KOVEC 관계자는 "사용 기간이 긴 PVC건자재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측면이 있다"며 "또 환경부와 '플라스틱 폐기물의 회수ㆍ재활용에 관한 자발적협약'을 체결하고 중간처리업체·고물상 등을 통해 폐기물을 수집해 재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
영상= 이수연 PD
이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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