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재발 후 살았지만 다 잃고 노숙자 생활…치료, 늘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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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재발 후 살았지만 다 잃고 노숙자 생활…치료, 늘 최선일까

입력
2021.10.26 17:00
수정
2021.10.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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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강현석 내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외래에서 본 한 환자는 12년 전 처음 진단을 받았고, 10년 전에 두경부암이 재발한 환자였다. 수술이 불가능한 재발암을 진단받고서도 10년째 투병 생활을 이어가며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첫 항암 치료의 반응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방사선 치료를 적절히 필요할 때마다 했고, 그 중간에 마침 최신 면역 치료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한 덕에 진행을 늦출 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몸은 서서히 나빠져 갔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쯤 되면 의학적으로는 기적으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환자 본인에겐 과연 축복일까 싶다. 직업은 오래 전에 잃었고, 재산은 치료비와 생활비로 소진해 버렸다. 지친 가족들도 오래 전에 떠났고, 급기야 어느 시점에는 거리로 밀려나 노숙자 생활까지 했다. 지금은 공적 부조로 겨우 생활하는데, 진행된 병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머리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다른 전이 두경부암 환자가 있었다. 그는 이미 많이 진행된 단계에 외래에 찾아왔고, 각광받고 있는 면역 치료를 시행했지만 희망과 달리 반응이 전혀 없어 상태가 더 나빠졌다. 나는 항암 치료를 권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충분히 보람된 삶을 살았고, 남은 여생은 가족과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고통이 심해져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의사 조력 자살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나는 호스피스에 의뢰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과 여행도 하며 잘 지내고 있는데, 병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단층촬영을 했는데 깜짝 놀랐다. 암이 더 진행한 것이 아니라, 몇 달 전에 비해 줄어 있었다.

종양학에서 생존율은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임상시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생존율 증가' 여부는 신약의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빨리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양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지속적으로 생존율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내가 처음 두경부암을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재발암이나 전이암 환자들은 6개월을 넘기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1년을 넘기는 경우가 흔하다. 무시무시하기로 유명한 미분화 갑상선암도 전에는 보통 진단 2~3개월 만에 사망했지만 최근에는 지속적인 약물치료의 도움으로 1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분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지난해 한국에 가서 10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를 뵙고 왔다. 매년 찾아뵐 때마다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게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른다. 5년 전만 해도 찾아뵈면 같이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최근 1, 2년 사이 급격히 기력이 쇠해 식사도 아주 적은 양만 드시고,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도 잘 못하신다. 그런데도 정신은 온전히 남아 있어서 젊었을 적 중국 내몽고에 다니셨던 얘기, 전쟁통에 피란 가던 얘기 등 70년 전에 있었던 일들까지 얘기해주시곤 한다. 그러면서도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니 이제 그만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살아 있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 있는가가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하다.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기능저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삶의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수적인 시기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질에 대한 가치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고, 그걸 신약의 허가에 쓸 수 있게끔 정량적 지표로 나타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생존이라는 확실한 지표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제 전이암 환자의 생존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생존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암의 조기 진단 및 근치적 치료 후 재발 방지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비가역적인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환자를 위해서는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앞서 말한 환자의 사례에서 보듯 그것이 오히려 생존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하버드대학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진단 초기부터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완화 치료를 받은 폐암 환자들은 통상적인 항암 치료만 받은 환자에 비해 삶의 질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생존 역시 증가했다고 한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육체적으로 점점 힘들어져 가는 환자에게 '그래도 아직 살아 계시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할 수 있는 치료가 있다는 것이 치료를 꼭 해야만 하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의대(UCSF) 종양내과 부교수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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