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이루어낸 성공을 되새김질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검사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10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하던 전직 검찰총장이 조소 작가로 변신했다. 2009년 제37대 검찰총장에 취임, 2011년 퇴임한 김준규 전 검찰총장 얘기다. 김 전 총장은 65세를 앞둔 2019년 말 "새로운 삶을 살려면 계획된 삶을 포기하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다니던 로펌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흙으로 작품을 빚는 '흙 작가'로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새로운 일, 좋아하는 일, 무엇보다 창작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미술에 대한 김 전 총장의 열정은 고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경기고 시절 미술책에 실린 권진규 작가의 '소녀상'에 감명받아 조소반에서 활동했던 그는 홍익대가 주최한 미술대회에서 조소 부문 1위에 입상하며 미대 진학을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검사 시절에도 주미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과 광주고검차장 재직 당시 지역 미대 강좌를 수강하며 관심을 놓지 않았다.
김 전 총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작업한 소조 작품을 모아 이달 22~28일 서울 북촌 한옥갤러리 일백헌에서 '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 전시회를 연다. 본인의 모습을 표현한 자소상과 가족과 주변의 일상을 담은 '흙 작품' 5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사진과 설명을 담은 동명의 책도 발간했다. 흙 작가로 새로운 삶을 찾게 된 경위와 흙을 만지며 깨달은 생각과 지혜도 적었다. 그는 "내가 나에게 쓴 메모를 정리한 책으로 작품 도록도 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 대표작으로는 자소상 '메멘토 모리'를 꼽았다. 자신의 얼굴을 빚은 것인데 표면의 흙이 갈라지고 터져서 위태로워 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작품을 말렸더니 흙이 터져나간 것이라 처음엔 실패작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도 죽으면 저런 모습으로 변하고 썩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메멘토 모리(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라고 이름 붙였어요. 작품을 물에 녹여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도 기획하고 있어요."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 "이번 전시회 이후 작업실을 따로 마련하고 보다 다양한 주제로 작품활동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흙작품을 만들며 깨달은 하나의 사실은 죽을 때까지는 모든 게 습작이란 점"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