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블레즈 콩파오레 전 대통령 재판 시작
상카라 전 대통령과 지지자 암살 혐의
"재판 탓 현지 혼란 더 커질 것" 주장도
‘아프리카 혁명의 아버지’를 암살한 범인이 34년 만에 단죄를 받게 될까. 1987년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토마 상카라 전 대통령을 살해하고 27년간 권력을 차지한 블레즈 콩파오레(70)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비극적 사건의 진범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기대 한편으로, 뒤늦게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면서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현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24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의 군사법원에서 콩파오레 전 대통령과 질베르 디엔데르 장군 등 14명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상카라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 12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은폐한 혐의다. 30년이 훌쩍 지나서야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시작하는 셈이다. 이날 재판은 이웃나라인 코트디부아르로 망명한 콩파오레가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궐석재판으로 진행됐다.
상카라는 33세이던 1983년 부정부패 척결과 프랑스 식민지 잔재 청산을 내세우며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반(反)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범(汎)아프리카주의에 기초한 급진적 개혁정책을 펼쳤다. 식량 자급자족 경제 확립, 문맹 퇴치, 어린이 의무교육 시행, 여성 할례와 강제 결혼, 일부다처제 근절 등 각종 사회ㆍ경제 개혁에 나서며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릴 정도다.
프랑스어로 ‘오트볼타(볼타강 상류) 공화국’으로 불리던 국가명을 현지어인 ‘부르키나파소(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로 바꾼 것도 그다. 영국 BBC방송은 “숨진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상카라는 여전히 아프리카 전역에서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다”며 “서아프리카 전역 택시에는 그의 얼굴이 새겨진 스티커가 부착돼 있고, 남아공 정치권은 그를 ‘영감을 주는 인물’ 중 하나로 인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급진적 정책 탓에 그는 기득권뿐 아니라 서방국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4년 뒤 정치적 동지이자 당시 법무장관이던 콩파오레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의 죽음에 관련된 언급은 콩파오레가 장기 집권하면서 27년간 금기시됐다.
‘상카라 암살 사건’ 수사는 2014년 콩파오레가 민중 봉기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뒤늦게 시작됐다. 새 정부는 2015년 그에게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상카라 시신을 수습해 조사를 벌이는 등 발 빠르게 의문사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지난해에는 범죄 현장에서 암살 사건 재구성도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이번 첫 재판을 시작으로 콩파오레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역사의 심판대’에 선 그가 실제 유죄를 선고받을지는 미지수다. 콩파오레는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 줄곧 “상카라가 교전 중 사망했을 뿐 자신과는 연관이 없다”며 재판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프랑스24는 “그는 화려한 변호인단을 동원해 체포영장을 취소시켰고, 전직 국가원수로서 면책 특권을 지닌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국가에 되레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안 그래도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과 연계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잇따른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르키나파소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BBC는 “콩파오레가 현지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만큼, 그에게 충성하는 일부 군부가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반면 비정부기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마티외 펠러랭 애널리스트는 “재판이 불안정성을 조장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며 “화해는 정의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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