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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돌풍' 유럽 지도자 2명의 동시 퇴진... 부패 의혹이 발목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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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돌풍' 유럽 지도자 2명의 동시 퇴진... 부패 의혹이 발목 잡았다

입력
2021.10.10 20:00
수정
2021.10.10 21:1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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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최연소 지도자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사임
'프라하의 트럼프' 바비시 체코 총리는 총선서 패배
총리 취임 4년 만에 부패 수사받으며 '불명예' 퇴진

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9일 수도 빈의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빈=EPA 연합뉴스

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9일 수도 빈의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 빈=EPA 연합뉴스

2017년 ‘깜짝 인기’로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켰던 유럽의 국가 수반 2명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실각했다. 당시 31세로 ‘세계 최연소 정치 지도자’ 기록을 세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거센 퇴진 압력에 스스로 물러났고,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5년 만에 권좌에 오른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도 총선에서 야당 연합에 무릎을 꿇었다. 인물 간 유사점은 별로 없지만, 두 사람 모두 부패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 민심을 잃은 결과는 공통적이다. 화려한 등장과 대조되는 씁쓸한 퇴장이다.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츠 총리는 이날 “지금 오스트리아에 필요한 건 안정”이라며 “교착 상태와 혼란을 끝내기 위해” 자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후임자로는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외무장관을 추천했다. 2017년 5월 중도우파 국민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지지율을 급등시켜 그 해 10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 ‘스타 정치인’의 몰락이었다.

쿠르츠 총리는 배임과 횡령, 부패 의혹으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다. 외무장관 시절이던 2016년부터 총리가 된 이후인 2018년까지, 호의적 언론 보도를 위해 광고비 명목으로 정부 예산을 쓴 혐의다. 올해 5월 의회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총리실과 재무부, 국민당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마쳤다. 정치권의 사임 요구에도 쿠르츠 총리는 줄곧 혐의를 부인하며 “사퇴는 없다”고 버텼으나, 연립정부 파트너인 녹색당까지 ‘12일 불신임안 의회 제출’ 카드를 꺼내며 압박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만 정치적 생명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쿠르츠 총리는 이날도 “결백”을 주장하며, 국회의원직과 국민당 대표직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임 총리 후보인 샬렌베르크 외무장관도 그에게 발탁돼 입각한 측근 인사다. ‘총리에선 물러나도 정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 BBC방송은 “더는 총리가 아니지만 당대표로서 각료회의에 참석할 것”이라며 “당원 일부는 쿠르츠의 사임을 일시적일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짚었다.

안드레이 바비시(가운데) 체코 총리가 9일 하원 선거에서 여당 긍정당(ANO)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라하=AP 뉴시스

안드레이 바비시(가운데) 체코 총리가 9일 하원 선거에서 여당 긍정당(ANO)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라하=AP 뉴시스

체코에선 정권이 바뀌게 됐다. 바비시 총리가 이끄는 긍정당(ANO)이 8, 9일 치러진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반(反)바비시’를 기치로 자유·보수주의 정당 3곳이 뭉친 ‘함께(SPOLU) 연합’은 득표율 27.8%로, 긍정당(27.1%)을 근소한 차이로 꺾었다. 중도좌파 해적당·스탄당 연합은 15.6%로 3위를 차지했다. 바비시의 연정 파트너였던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의회 입성에 필요한 최저 득표율 5%에도 미치지 못했다.

‘함께 연합’(하원 71석 확보)과 해적당·스탄당 연합(37석)은 연정 구성에 곧바로 합의했다. 두 당의 의석을 합하면 108석으로, 전체 의석(200석)의 과반을 넉넉히 넘는다. 2017년 총선보다 7석 줄어든 72석에 그친 긍정당은 제1야당으로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함께 연합’ 수장이자 차기 총리 후보인 페트르 피알라는 “우리는 변화를 약속했고, 이제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 2위 대기업 아그로페트르를 운영하던 바비시 총리는 2012년 긍정당을 창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10월 총선에서 긍정당을 단숨에 제2당으로 올려놓더니, 2017년 총선을 통해 총리에 올라 정계를 뒤흔들었다. 기업가 출신에다 반(反)유럽연합(EU)ㆍ반이민을 표방했던 터라 ‘프라하의 트럼프’로도 불렸다.

그러나 ‘바비시의 포퓰리즘’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결정타는 총선 직전인 3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가 공개한 ‘판도라 페이퍼스’였다. 그가 2009년 탈세를 목적으로 유령회사를 이용, 프랑스 호화 별장을 사들인 의혹이 담겨 있었던 탓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반이민 정책은 아직도 호소력이 있었지만, 판도라 페이퍼스 사태로 대도시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감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바비시 총리가 개인 소유 업체를 이용, EU 보조금 190만 유로를 편취했다는 의혹도 수년째 수사가 진행 중이다. 뉴욕대 프라하 캠퍼스의 이르지 페헤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바비시 시대의 종말로 체코는 헝가리, 폴란드 같은 극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됐다”고 평했다.

김표향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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