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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난민 출신 작가의 목소리, 세계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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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난민 출신 작가의 목소리, 세계의 중심으로

입력
2021.10.07 22:56
수정
2021.10.08 10:03
2면
0 0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탄자니아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2015년 당시 재직 중인 켄트대 강의 영상에서 말하고 있다. 켄트대 유튜브 캡처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2015년 당시 재직 중인 켄트대 강의 영상에서 말하고 있다. 켄트대 유튜브 캡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탄자니아 잔지바르 출신의 소설가다. 그 스스로 난민이기도 했던 구르나는 특히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및 인도의 탈식민주의에 관심을 갖고 난민에게 남아있는 제국주의의 유산을 문학으로 탐구해온 작가다.

구르나는 1948년 잔지바르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 영국 록밴드 퀸의 리드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도 바로 이곳 잔지바르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자치령인 잔지바르는 굴곡진 식민 지배의 한이 서린 땅이다. 1503년부터 200년간 포르투갈에 점령당했으며 그 이후에는 오만의 일부로, 19세기 중엽에는 영국이 점령했다. 19세기 말에는 독일이 한때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1963년 영국에서 독립을 인정받고 이듬해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가 1964년 탕가니카와 연합해 탄자니아 공화국이 됐다.

구르나는 이즈음 군인들이 잔지바르 정부를 전복시켰던 폭력 봉기로 18세의 나이에 잔지바르를 떠나 난민이 됐다. 이후 학생 신분으로 영국으로 향했으며, 이후에는 계속 영국에 거주하며 10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써냈다. 모국어는 스와힐리어지만 21세에 영어를 자신의 문학 언어로 택해 작품을 써왔다. 대신 산문에는 종종 스와힐리어와 아랍어 및 독일어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이 7일 스웨덴 한림원에 전시돼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이 7일 스웨덴 한림원에 전시돼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그 자신의 삶의 행로처럼, 구르나의 문학 세계는 ‘디아스포라’로 설명되는 지리적, 사회적 맥락에서의 ‘이주’가 소설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동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또는 아프리카 내에서의 이주는 구르나 소설의 핵심이다. 그의 초기 소설인 ‘출발의 기억’(1987), ‘순례자의 길’(1988), ‘도티’(1990) 모두 현대 영국에서의 이민자 경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구르나의 네 번째 소설이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파라다이스’(1994)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식민지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12세 소년 유수프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고향을 떠나 부유한 삼촌네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소년이 낯선 세계와 맞닥뜨리며 자라는 성장담이자 동시에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으로 구르나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다. 이후 2001년 출간한 소설 ‘바다 옆에서’가 또 한번 부커상 후보에 오르면서 구르나는 동시대 가장 중요한 영국 아프리카 작가 중 한 명으로 떠오르게 된다.

주지할 만한 점은 구르나의 정체성이 아프리카 무슬림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이자 아프리카 출신으로 영국에 건너와 활동하는 작가라는 그의 복잡한 정체성은 문학 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는 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2중, 3중의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차별을 받으며 실존의 위기를 겪는 작가의 삶이 작품에 잘 녹아 있다”며 “특히 대표작인 ‘파라다이스’ 속 주인공의 시각에 이방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연보.

압둘라자크 구르나 연보.


아프리카 전문가인 이석호 카이스트 인문사회학과 교수 역시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본토와 유럽의 이중적 지배를 받는 지역”이라며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아프리카 대륙 출신 작가와 달리 식민주의를 더 섬세하고 굴곡지게 다룬다”고 설명했다. 한림원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안데르스 올손은 “그의 소설은 틀에 박힌 묘사에서 벗어나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동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에 우리의 시선을 열어준다”고 소개했다.

1980~1982년 나이지리아 바이에로대에서 강의했으며 1982년 영국 캔터베리에 있는 켄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은퇴할 때까지 켄트대에서 영문학과 탈식민주의 문학 교수로 활동했으며 학과장도 지냈다. 2005년에는 소설 '탈주'를, 지난해엔 소설 '사후'를 출간하며 작가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구르나의 수상으로 아프리카는 다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보유하게 됐다. 아프리카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1986), 이집트의 나기브 마푸즈(1988),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이딘 고디머(1991),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존 맥스웰 쿠체(2003) 이후 다섯 번째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된 구르나의 작품이 없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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