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시작해 지난달 시즌2까지 띄워
'여성 운동선수' 직군 출연자들로 새 장르 개척
외모로 대상화하는 대신 주체적 여성 캐릭터 부각
계체 통과에 부족한 150g 감량을 위해 삭발을 감행한 유도선수 강유정, 한국 여자 다이빙 사상 올림픽 첫 준결승에 진출한 김수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동메달을 놓친 역도 김수현... 최선을 다해 뛴 2020 도쿄올림픽의 주역들이 총출동한 티캐스트 E채널 예능 '노는언니'가 지난달 선보인 '노(勞·애쓸 노) 메달' 특집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줬다. 혹여나 선수들이 '노(NO)메달' 성적에 주눅이라도 들라치면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은 다 금메달감" "출전 자체로도 대단하다"고 다독인다. 지난해 8월 16회 편성으로 처음 시작한 '노는언니'가 1주년을 넘어 지난달 시즌2까지 띄운 비결이다.
"전통적인 예능 문법대로였다면 메달리스트를 먼저 초대했겠죠? 이번 '노 메달' 특집은 확실히 '노는언니'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린 것 같아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노는언니'를 연출하는 방현영 CP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는언니'는 "다양한 종목의 여자 선수들이 TV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던 박세리 도쿄올림픽 여자골프 감독을 주축으로 곽민정(피겨), 김온아(핸드볼), 김은혜(농구), 남현희(펜싱), 정유인(수영), 한유미(배구) 등을 한데 모은, 국내 최초의 여자 운동선수 예능이다. 과거엔 없던 '여성 선수'라는 직군의 출연자들로 새 장르를 개척한 셈이다.
여성과 운동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래된 편견을 깨고 '운동하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노는언니'가 불러온 변화는 상당하다. 승부욕 있고, 운동 잘하고, 근육이 발달한, 기센 아니 기세 좋은 여자들에게 대중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기존 미디어에서는 이렇게 승부에 진심이고, 운동이나 몸을 쓰는 일에 능한 여성 캐릭터가 없었으니까요. 운동선수가 발산하는 건강한 에너지를 보는 그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과 쾌감을 안겼던 것 같아요."
'노는언니'는 운동하고 신체를 단련하는 여성들을 조명하는 최신 흐름에 올라탄 동시에 앞에서 이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웹예능 '오늘부터 운동뚱' 등 여성 스포츠예능의 본보기이자 선구자다. 방 CP는 "여성 스포츠예능이 많아져야 '노는언니' 역시 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며 "이런 흐름은 굉장히 반갑다"고 했다.
여성 스포츠예능이 흥하면서 여성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달라졌다. 실력과 상관없이 여성 선수에게 들러붙던 '미녀군단', '여제' 등 수식은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방 CP는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외모나 몸매로 대상화하는 방식은 피하는 게 최근 예능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굉장히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짚었다.
그중에서도 '노는언니'가 여성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사려깊고 특별하다. 방 CP는 "운동선수인 출연자들을 '누구의 엄마' 등으로 호칭하지 않고, 최대한 자기 자신으로 다루려고 신경 쓴다"며 "좀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느낌의 캐릭터였으면 한다"고 했다. 미혼부터 자녀가 있거나 없는 기혼까지 다양한 '노는언니'들의 대화 주제는 연애나 결혼, 육아를 아우르지만 주되지 않다. 남현희는 '엄마 검객'이나 '하이 엄마'가 아니라 그냥 펜싱 선수 남현희일 뿐이다.
'노는언니'는 특히 도쿄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에 열광한 여성들의 "여성 운동선수들을 더 보고싶다"는 갈증을 채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국제대회 노메달 선수뿐 아니라 비인기 종목을 꾸준히 다루면서 "나도 운동하고 싶다"는 반응을 이끌었다. 이는 다시, 보기 좋은 몸보다는 건강한 몸으로 가꾸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방 CP는 "예능으로 출발을 했지만 좋은 선례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며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여러 분야의 여성 선수를 꾸준히 새로 발굴하는 한편 다양한 국내외 스포츠 행사와 경기를 소개해 더 많은 대중적 관심을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노는언니2'가 여성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이슈와 환경을 조성하는 선순환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응원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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