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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청소' 돼야 하는 삶은 없다

입력
2021.10.01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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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2세 작가 유미리
우에노 공원 노숙자 삶 들여다본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영국 BBC는 7월 30일 보도한 '도쿄 노숙인이 사라졌다' 제목의 기사에서 "도쿄는 도시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노숙인들에게 올림픽 기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고 전했다. BBC 영상 화면 캡처

영국 BBC는 7월 30일 보도한 '도쿄 노숙인이 사라졌다' 제목의 기사에서 "도쿄는 도시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노숙인들에게 올림픽 기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고 전했다. BBC 영상 화면 캡처


29일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스가 요시히데 뒤를 이를 차기 총리로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장관이 결정됐다. 이로써 지난해 9월 취임한 스가 총리는 1년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게 됐다. 스가를 ‘단명 총리’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무리한 도쿄올림픽 강행이었다. 국민 반대와 코로나 확산 와중에 강행된 무관중 올림픽은 결국 일본에 어마어마한 경제손실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도쿄올림픽으로 내상을 입은 것은 스가 총리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거리를 ‘깨끗이’ 한다는 명목으로 내쫓은 노숙인들 역시 도쿄올림픽이 남긴 그림자 중 하나다. 재일교포 2세 작가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우에노 공원의 늙은 노숙자 ‘가즈’를 주인공으로 1964년과 2021년 두 번의 도쿄올림픽의 명암을 그린다.

현지에서는 2014년 발표됐고 국내에도 이듬해 '우에노역 공원 출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작품이 재조명된 것은 지난해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미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제71회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에서 수상하면서다. 재일교포 작가로서는 최초 수상이고, 일본 작가로서는 두 번째 수상이다. 이후 일본 현지에서 ‘역주행’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판매 누계 43만 부를 돌파했다. 이번에 재출간된 한국어 개정판은 재일한국인 3세 번역가인 강방화가 번역을 새로 맡았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소미미디어 발행. 212쪽. 1만3,800원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소미미디어 발행. 212쪽. 1만3,800원


소설의 배경은 제목처럼 ‘도쿄 우에노역’이다. 우에노역은 북쪽 지역인 도호쿠 지방으로 향하는 관문과도 같은 철도역으로, 일본 경제 고도성장기 돈을 벌기 위해 도호쿠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소설은 바로 그 일본 경제 고도성장기를 통과해 온 가즈라는 남성의 시선을 따라 우에노역 공원을 스쳐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소묘한다. 벚꽃을 구경하는 사람들, 자녀 얘기를 나누는 중년 여성들, 어린 딸과 엄마, 회사의 선후배. 가즈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때 자신에게도 머물렀던 ‘삶’을 떠올린다.

가즈는 1933년 일본의 125대 천황인 아키히토와 같은 해 태어났다. 열두 살에 종전을 맞은 후에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거나 어촌에서 다시마를 수확하는 등 갖가지 일을 전전했다. 1964년 치러진 첫 번째 도쿄올림픽 토목 공사에 인부로 일하기 위해 상경한 뒤 평생을 타지에서 일한다. 67세가 되었을 때 가즈는 집을 떠나 우에노 공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죽는다. 소설은 그렇게 유령이 된 남자가 다시 우에노 공원으로 돌아오며 진행된다.

남자의 일생을 되짚는 이 과정은 흔히 단순한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할 때 간과되기 쉬운 것들을 추적하는 것과 같다. 올림픽이라는 국가 행사의 성공적 개최는 경기장을 만든 수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피땀이 바탕이 됐다는 것. 가난해지는 것과 노숙자가 되는 것은 열심히 살지 않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천황가 사람들이 행차라도 하는 날에는 강제 퇴거를 당해야 하는 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 자체가 어딘가로 ‘치워져야’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열린 제71회 전미도서상 번역 소설 부문에서 수상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와 번역가 모건 가일스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전미도서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유미리 작가는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이를 일본 문학의 쾌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미도서상 유튜브 캡처

지난해 열린 제71회 전미도서상 번역 소설 부문에서 수상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와 번역가 모건 가일스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전미도서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유미리 작가는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이를 일본 문학의 쾌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미도서상 유튜브 캡처


이 책이 처음 출판된 2014년 당시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이 담긴 눈으로 6년 뒤에 열릴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래서 더욱 저는 그런 시선 뒤로 아웃포커싱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감동’과 ‘열광’ 너머에 있는 것들을”이라고 썼다.

그리고 2019년 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일본어로 읽고 쓰고 말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전미도서상 수상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이를 일본 문학의 쾌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직후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우익의 살해 협박과 출판 금지를 겪어야 했던 유미리는 2021년 현재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대해 쓰는 작가가 됐다. 그는 차기작으로 후쿠시마에서 오염 제거 작업원으로 일하다 소모품으로 버려지고 자살한 노숙자의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밝혔다. 소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작가가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지금의 일본 사회를 목격한 결과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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