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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저주'…  금융 공학은 우리를 빈곤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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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저주'…  금융 공학은 우리를 빈곤에 빠뜨렸다

입력
2021.09.30 19: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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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섁슨 '부의 흑역사' 번역 출간
부의 약탈 기계로 변모한 '금융화' 전모 추적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지난 3월 19일 영국 런던 템스강변 산책로를 걷는 시민들 뒤로 템스강 북쪽에 위치한 금융지구 '시티오브런던'이 보인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 19일 영국 런던 템스강변 산책로를 걷는 시민들 뒤로 템스강 북쪽에 위치한 금융지구 '시티오브런던'이 보인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소위 선진 부동산 금융 기법이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면 좌절감과 허탈감을 호소하는 여론이 지금처럼 거셌을까.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돼 버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은 PF를 통해 자본 규모를 키운 한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개발 사업이 시발점이었다. 국내 도시개발은 외환위기 이후 PF 방식 등 다양한 신자유주의 부동산 금융 기법이 활용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PF는 불확실한 미래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어서 부동산 호황 시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영국의 글로벌 경제·정치 분야 저널리스트이자 분석가인 니컬러스 섁슨의 '부의 흑역사'를 읽으면서 대장동 개발 시행사 화천대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금융이 생산 부문에 자본을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부의 약탈 기계로 변모한 '금융화'의 전모를 추적한다. 금융적 사고가 경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는 금융화 사회에서 투자는 소모적인 부의 수탈 활동으로 몰린다.

다시 부동산의 금융화가 진전된 오늘의 한국사회로 돌아와 보면, 각종 특혜 의혹을 차치하더라도 각계 고위직 인사들이 대장동 개발을 원주민의 혜택이 아닌 축재 목적으로 활용한 것만으로도 공분의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영국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오브런던'을 대표적 예로 들어 금융의 성장이 경제에 이바지하기는커녕 경제를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1950년대만 해도 다른 경제 영역의 성장을 이끌었던 시티오브런던은 영국 제조업이 빠르게 쇠퇴한 1970년대 이후 엇비슷한 서구 국가보다 훨씬 크게 성장했다. 영국 금융의 비약적 성장은 다른 분야 사업이나 보통 사람의 절박한 요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은행들은 주로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며 주택이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했다. 따라서 금융 부문의 엄청난 성장 속에도 영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거의 모든 북유럽 국가보다 낮았다. 이처럼 금융 부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전체 경제는 더 황폐해지는 역설을 저자는 이 책의 원제인 '금융의 저주(The Finance Curse)'라 일컫는다.

지난 8월 4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증권브로커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월 4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증권브로커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물론 '부의 흑역사'가 제기하는 과도한 금융화의 허상과 불평등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삶 전반에서 금융의 저주가 나타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가령 직원과 공동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던 기업들은 갈수록 회사 소유자인 주주의 부를 불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치열한 제품 개발 경쟁으로 이익률을 높였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날, 이들 기업은 금융화로 인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챙기고 있다. 더욱이 세를 불린 금융화는 훨씬 강력하게 재무 비율에 집중한다. 회사는 자산을 재무제표에서 빼고 비용을 내리고 일자리를 줄이고 세금을 낮춘다. 자동차 공유 플랫폼 우버는 자동차에 투자하지 않고,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거의 소유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금융화의 피해 양상과 더불어 파생상품, 신탁, 특수목적회사, 사모투자 등 금융 기법의 작동 원리를 해부한다.

저자는 특히 금융화의 역사가 자본의 흐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법적 규제 장치가 무력화하고 와해돼 온 역사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세금 감면과 금융 규제 완화로 다국적 대기업과 은행, 세계 유동자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국가 경쟁력' 신화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금융을 무작정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규모가 너무 큰 금융, 권력이 너무 강한 금융, 민주주의로 검증받지 않은 빗나간 금융"이다. 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기이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에 출간됐다. 저자는 금융의 저주 시대에 부의 수탈자가 된 지배층이 중산층이나 빈곤층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분열과 불화를 부추기는 현실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는 약탈자의 탐욕에 맞서 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시민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똑똑한 자본 통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국외로 나가는 자본 흐름을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고, 국내로 유입되는 자본 요소를 신중하게 선택하자는 주장이다. '거대 금융'의 허상을 조목조목 짚은 문제 제기에 비해 해법 부분에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부의 흑역사·니컬러스 섁슨 지음·김진원 옮김·부키 발행·560쪽·2만2,000원

부의 흑역사·니컬러스 섁슨 지음·김진원 옮김·부키 발행·560쪽·2만2,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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