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경찰청 책임수사관 A(50)경위가 수사 정보를 누설했다며 구속된 것을 둘러싸고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검찰이 캐비닛에 묵혀둔 A경위의 자료를 끄집어내 새로운 사건으로 인지하는 이른바 '캐비닛 사건'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A경위가 지난 6월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과 관련해 2년 전 해당 조합 비리에 대한 수사 요구를 묵살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광주경찰청장에게 공개 질의하며 경찰 수사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은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A경위 측은 "검찰이 2년 전 폐기했어야 할 압수수색 자료를 보관해 오다가 이번 수사에 써먹었다"고 했다. 광주지검 강력부는 지난해 4월 A경위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하면서 특수부가 보관하고 있던 A경위의 휴대폰 포렌식(디지털 증거 복원) 데이터를 압수했다.
특수부는 앞서 2019년 7월 광주경찰청으로부터 'S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 및 K경감의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을 송치받았는데, 당시 참고인이었던 A경위의 휴대폰 데이터도 함께 넘겨받은 뒤 이를 삭제하지 않고 보관해 왔다. 당시 A경위에 대한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보면 해당 사건과 관련된 전자정보만 탐색·복제·출력하고 그 외 전자정보는 삭제·폐기 또는 반환하도록 돼 있었지만 검찰은 이를 무시했다. 이 데이터엔 A경위가 2018년 7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채용 사기 사건으로 수배 중인 전 노조 간부의 도피행각을 도운 경찰 간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서 사진을 외부로 유출한 증거도 있었다. 이는 검찰이 A경위에게 적용한 4건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뒷받침할 물증 중 하나다.
문제는 강력부가 A경위 휴대폰 데이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A경위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A경위는 이 사실을 1년 뒤인 올해 4월에서야 알고 광주지법에 준항고를 신청했다. 준항고는 법관 등 사법기관이 행한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다. A경위는 당시 "검찰이 1년 전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고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수사해 왔다. 압수수색영장 발부를 취소해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5월 말 "A경위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더라도 그 압수수색 절차에 중대한 절차적 위법은 없다"며 준항고 신청을 기각했다. 수사기관이 수사기관 사무실에서 이미 압수된 (휴대폰)전자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에 피압수자나 변호인에게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올해 4월 A경위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수사하던 강력부가 광주지검 압수물 보관창고에 있던 A경위의 휴대폰 데이터를 다시 압수수색하면서 A경위에게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강력부는 A경위에게 압수수색에 참여하라고 고지했다. A경위 측은 "이는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 절차적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고, 판사도 사실과 법리를 오인하고 있다"며 압수수색 참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공교롭게도 준항고 신청을 기각한 판사는 지난 23일 A경위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했다.
이처럼 A경위의 유·무죄를 가르는 '위법 수집 증거' 여부를 놓고 공방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사회단체의 시선은 싸늘하다. A경위가 지난해 1월 월산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입찰 담합 및 조합 비리 수사 과정에서 비위 관련자인 B업체 대표를 입건하지 않아 직무유기 혐의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가 2019년에도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비리 의혹도 덮었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어서다. 학동 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공익제보자가 지난 7월 학동 4구역 정비기반시설공사 수주 대가로 B업체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브로커 C씨의 뒷돈 거래 정황이 담긴 녹취를 이미 2019년 12월 A경위에게 들려줬지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A경위가 그때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학동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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