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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대신 파당뿐, 이런 경선은 처음 본다

입력
2021.09.29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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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홍인기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홍인기 기자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합리적 토론은 없다.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 구분이 안 된다. 파당적 관점에 따라 사실도 달라진다. 끝없이 반복되는 '논란 유발'만 있다. 지켜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결론은 여론조사가 내린다. 조사 결과에 따라 진실에 대한 해석도 변형된다. 세상이 온통 파당적 의견과 그들 사이의 여론 전쟁으로 뒤덮인 느낌이다.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분열시킨다. 이건 파당들의 전쟁이지 정당 정치가 아니다.

파당(faction)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 현상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의 역사를 파당 없이 설명할 길은 없다. 중세 시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도 파당을 달리하는 가문 싸움에서 비롯되었다. 파당이 서구적인 현상만도 아니다. 동아시아 어느 국가든 과거 역사를 파당 없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옛날이야기만도 아니다. 정치가 나빠지면 언제든 파당이 지배한다. 무리를 짓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파당의 무리가 윤리적 책임성을 벗어던지면 사회는 해체의 위기로 치닫는다.

정당(party)은 다르다. 정당은 근대적인 현상이다. 시민혁명으로 입헌주의와 의회주권이 제도화된 이후 시작된 것이 정당 정치다. 여성과 노동자를 포함해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현대 민주주의를 만든 것도 정당이다. 그러면서 '파티(party)'는, 파괴하고 깨뜨린다는 의미의 어원을 가진 '팩션(faction)'과 달리, 참여(participation)나 협력(partnership)과 어원을 같이하는 통합적 의미로 발전했다.

정당은 파당이 아니다. 파당은 사회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다. 정당은 사회 전체의 역량을 진작시킬 때만 긍정된다. 파당은 '자신들을 위한 부분'인 반면, 정당은 '전체를 위한 부분'이다. 정당은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의 원리, 이념, 정견을 발전시킨다. 공익적 신념이 없다면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파당의 목적은 자신들의 무리를 위해 이권과 권력을 빼앗아오는 데 있다. 정당은 "시민들로부터 공적 권위를 위임받을 때 약속했던 공동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될 때만 정당성을 갖는다.

정당이 파당으로 퇴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현대 정당 이론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출신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는 이렇게 강조했다. "파당이 정당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 파당의 존립 근거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당이 언제든 파당으로 퇴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고다." 정당 정치의 퇴행은 곧 정치의 파당화로 이어진다.

캠프 간 파당 싸움이 정치를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빛을 잃는다. 정당의 경선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공익적 열정을 집약하는 기회로 작용하지 못한다. 토론과 숙의를 이끌 정치 공론장, 언론 공론장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남는 것은 맹목적 권력 투쟁뿐이다. 상대 파당의 몰락과 자기 파당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거는 캠프 정치에 윤리적 책임성이 들어설 자리도 없다. 지금 우리가 공동체를 이끌 ‘시민 의장(president)’을 뽑는 것인지, 무책임한 도당(徒黨)들에게 공적 자산을 약탈할 기회를 주는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런 경선은 처음 본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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