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스미마센’ 진짜 미안해서 하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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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스미마센’ 진짜 미안해서 하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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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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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스미마센’의 화법을 통해 본 일본 문화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에서 ‘스미마센’과 같은 사과의 화법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사과나 사죄의 관행이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과나 사죄에 관한 문화적 해석이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향이 크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거기에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우리말로는 ‘죄송합니다’이지만…

오랫동안 일본에 살면서 ‘스미마센 (すみません)’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우리말로는 ‘죄송합니다’라고 번역되는데, 일본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 밖으로 내게 된다. 버릇이라는 것이 한번 들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법. 한국에 온 뒤에도 아무 때나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습관이 생겼다. 주변에서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자꾸 사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매사에 폐를 끼칠까 봐 저어하는 조신한 성격은 아니다. 일본에서 ‘스미마센’을 외치는 기세로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가 튀어나온 것뿐이었으니, 그냥 멋쩍게 웃고 지나갈 수밖에.

일본에서 ‘스미마센’의 용법은 실로 다양하다. 사과나 사죄를 표명하기 위해 쓸 때도 있지만, 체감상으로는 고맙다는 뜻으로 쓸 때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아리가토 (ありがとう)’라는 말이 있지만, 많은 경우에 이 말을 ‘스미마센’ 으로 대체할 수 있다. 두 표현의 뉘앙스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오늘 입은 옷이 참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에는 ‘아리가토!’ 라고 담백하게 응답하는 것이 무난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맛있는 커피를 타 주었을 때에는 ‘스미마센!’ 으로 응대하는 것이 좀 더 예의바른 느낌이다. ‘아리가토’ 라고 해도 문제는 없지만, 나를 위해 일부러 수고스러운 행동을 해 준 상대방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일본 문화에서는 더 자연스럽다.

한편, 음식점에서 점원을 부를 때, 가게에서 물건값을 물어볼 때 등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는 애매한 상황에서도 ‘스미마센’으로 말문을 연다. ‘당신의 일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의미로, 친분이 없는 상대에게 말을 걸 때에 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점에서 주문을 할 때에는 ‘여기요~’, 가게에서 물건값을 물어볼 때에도 ‘여기요~’, 행인에게 길을 물어볼 때에도 ‘저기요~’다. 일본에서는 ‘스미마센’이 바로 이런 만사형통의 관용구다.

채무 의식을 주고받으며 굴러가는 일본 문화

일본인은 왜 이렇게 다양한 장면에서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일까? 사실 이 습관적인 사과의 화법에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남에게 빚지고 싶지는 않다’는 자의식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스미마센’ 이라는 말은 ‘빌린 것을 갚다’라는 뜻의 동사 (済む, ‘스무’라고 읽는다)의 부정형으로, 말 뜻을 그대로 옮기면 ‘아직 빚을 갚지 못했습니다’, 또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다. 혹은 이 말의 어원을 ‘깨끗하게 맑아지다’라는 뜻의 동사(澄む, 한자는 다르지만 ‘済む’와 동일하게 ‘스무’라고 읽는다)에서 찾고, 이 말이 ‘내 맘이 썩 편치 않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일본 문화에서는 ‘스미마센’뿐 아니라 ‘송구스럽습니다 (恐れ入ります)’,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申し訳ありません)’, ‘(내가) 나빴다(悪いね)’ 등 다양한 사죄의 표현이 감사의 뜻을 전달하는 장면에서 활용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깍듯한 사과의 화법 속에 상대방에게 빚을 졌다는 상황 인식,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에 불편함이 있다는 정서가 에둘러 표현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국화와 칼>(1946년)이라는 일본 문화 연구서로 유명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도 ‘스미마센’이라는 사죄 표현이 갖는 독특한 맥락에 주목했다. 그녀는 이 말의 근저에 일본인이 서로에 대한 갖는 강한 채무 의식이 깔려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심리야말로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적 원리라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누군가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답할 의무를 진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손윗사람도 아닌 대등한 위치의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고 착잡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보답해야만 하는 채무가 발생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 그에게 불필요한 채무를 떠안기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 더 사려깊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길거리에서 사고가 났을 때에 모여든 군중들이 그 일에 좀처럼 끼어들지 않고 그저 수수방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본인이 다른 사람의 일에 특히 무관심해서라기보다는, 괜히 참견했다가 그 사람에게 ‘불필요한 은혜를 입히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베네딕트는 주장한다. 실제로 에도 시절의 일본에는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에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법령이 있었다고 한다. 타인의 도움을 불편한 채무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문화적 정서가 이런 생활 속 규범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과의 화법과 사과의 행위는 다르다

일본 문화에서 사과의 화법은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쌍방 간의 의무와 권리를 서로 확인하는 문화적 코드다. 언젠가는 반드시 보은하겠다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지를 표하는 상징적인 화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에서나 일단 사과하고 보는 화법이 일상생활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과의 표현을 남발하는 일본어 화법을 근거로 삼아 “일본인은 예의바르다”는 고정 관념도 있다. 길을 가다가 부딪혀도 ‘스미마센’, 엘리베이터에 동승해도 ‘스미마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에도 ‘스미마센’, 일단 사과부터 하는 대화법이 이방인에게는 친절하고 예의바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 대해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사과의 표현을 즐겨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웃나라에 끼친 큰 피해에 대해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 표명이 없었으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한일 과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1990년 당시 아키히토 일본 국왕이 한일 과거사에 대해 ‘통석의 념 (痛惜の念)을 금할 수 없다’며 에둘러 사죄의 뜻을 표명한 적이 있는데, 이는 마치 제3자인 양 한일 과거사 문제를 비평한 표현일 뿐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담긴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스미마센’과 같은 사과의 화법이 자주 인용된다고 해서, 그 사회에 사과나 사죄의 관행이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사과나 사죄에 관한 문화적 해석이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과와 사죄의 어법을 통해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되새긴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하는 태도는 쉬이 접하기 어렵다는 인상이 있다. 사과의 화법과 사과의 행위는 엄연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과의 화법은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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