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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이론' 대가 주디스 버틀러 향한 '공격' 단호히 끊어낸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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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이론' 대가 주디스 버틀러 향한 '공격' 단호히 끊어낸 EBS

입력
2021.09.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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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주디스 버틀러 편
"버틀러는 소아성애, 근친상간 옹호" 철회 요구에
제작진 "사실 아닌 내용에 정정보도 요청" 공지
방송 이후에도 시청자 게시판 찬반 여론 들끓어

EBS에서 방영 중인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디스 버틀러. 화면 캡처

EBS에서 방영 중인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디스 버틀러. 화면 캡처

"EBS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주디스 버틀러와 관련한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과 타당성 검토를 진행한 결과 사실과 다름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객관적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한 해당 언론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할 것입니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프로그램 제작진이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이 프로그램은 각 분야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 40인의 강연을 담은 시리즈. 유발 하라리(역사), 마이클 샌델(정치철학), 폴 크루그먼(경제), 조지프 나이(정치), 리처드 도킨스(생물) 등 세계적 지성을 안방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8월 말 방송 시작 이후 호평 일색이다.

단 한 사람, 세계적 권위를 지닌 젠더 이론가이자 퀴어(동성애자) 이론의 대가인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대 교수에 대한 공격만 빼놓고는 말이다. EBS 시청자 게시판은 한 달 넘게 버틀러의 방송을 철회해달라는 글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EBS 제작진은 21일 예정대로 방송을 내보냈다. 버틀러와 관련해 객관적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해선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는 뜻도 함께 밝히면서다.


강연 반대 측 "버틀러는 소아성애, 근친 상간 옹호론자"

주디스 버틀러 교수의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단체의 주장을 보도한 기사들. 구글 검색 사이트 화면 캡처

주디스 버틀러 교수의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단체의 주장을 보도한 기사들. 구글 검색 사이트 화면 캡처

EBS를 비판하는 이들은 버틀러가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을 옹호하는 인물"이란 주장을 펼치며, 방송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버틀러의 특강 철회를 촉구한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과 '복음법률가회'는 지난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을 지지하는 반윤리적 입장은 저서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대표적인 저서 젠더트러블에서,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가 동성애 금기를 전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해체하려고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달 31일 국민일보에 게재된 정일권 전 숭실대 기독교대학원 교수의 칼럼과도 궤를 같이한다. 정 전 교수는 '퀴어 이론과 젠더페미니즘의 대부 푸코, 어린 소녀들 상대로 성폭력'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말하는 젠더페미니즘은 '푸코적 페미니즘'"이라는 논리를 편 뒤 버틀러가 푸코의 사상을 계승했다는 걸 전제로 "버틀러는 소아성애를 지지하며 근친상간 금기를 해체한다"고 주장했다.


"버틀러 이론의 핵심은 성과 젠더의 이분법적 사고 거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제3세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친 이는 주디스 버틀러였다. 퀴어(동성애자) 이론의 창시자인 그는 ‘젠더 트러블’(1990)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사회ㆍ문화ㆍ역사적으로 구성되며 반복된 수행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제3세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친 이는 주디스 버틀러였다. 퀴어(동성애자) 이론의 창시자인 그는 ‘젠더 트러블’(1990)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사회ㆍ문화ㆍ역사적으로 구성되며 반복된 수행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선을 긋는다.

먼저 버틀러가 소아성애나 근친상간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버틀러의 젠더론을 왜곡한 자의적 해석이란 지적이 나온다.

버틀러는 1990년에 출간한 '젠더트러블'에서 여성·남성이라는 성별 이원론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역사적으로 구성됐고, 반복된 수행(performance)으로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성과 젠더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는 버틀러의 논리는 퀴어 이론의 한 출발점을 이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같은 관점에서 버틀러가 옹호한 건 동성애와 성소수자였다.

EBS는 버틀러가 근친상간을 옹호했다는 주장을 두고 "프로이트의 학술 개념인 '근친애'와 범죄인 '근친상간'을 혼동하여 사용하며 버틀러가 근친상간을 지지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버틀러가 소아성애를 옹호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버틀러가 소아의 성 욕망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마치 소아성애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아동에게 성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과 성인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 욕망인 '소아성애'는 다른 의미"라는 입장이다.


"성 소수자, 동성애 반대 프레임 확산 위한 혐오 논리"

주디스 버틀러 방송 관련 찬반으로 갈린 EBS 시청자 게시판. 홈페이지 화면 캡처

주디스 버틀러 방송 관련 찬반으로 갈린 EBS 시청자 게시판.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럼에도 '버틀러가 소아성애, 근친상간 옹호론자'라는 주장으로까지 번져나가는 데는 성소수자, 동성애 반대 프레임을 확산시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소수자 옹호자들을 '모든 금기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혐오 논리"(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 미디어스와의 인터뷰)라는 것. "성소수자를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금기시되는 것들을 끄집어 와서 논의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설명이다.

방송 이후에도 EBS 시청자 게시판은 여전히 찬반 여론으로 갈라졌다. "EBS 방송은 페미 방송이자, 음란 방송"이란 원색적 비판을 쏟아내며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여론이 여전한 가운데 "집단 무(無)지성의 현장 같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편향된 선동에 휘둘리지 말라"며 반박하는 글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강연은 25일까지 방송될 예정이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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