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한국일보>
기숙사에 살던 학생 시절, 하지 말라는 행동은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이리저리 폴짝거리던 때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혼자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마음속 청개구리가 외치던 어느 날 건물 바깥의 비상계단을 통해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자꾸만 몸에 달라붙는 거미줄을 떼어내며 1층까지 무사히 도착했는데, 탈출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슴 중앙에 커다란 거미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밤 산책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고 그날 이후 거미줄이 몸에 닿는 느낌이 들면 혼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밤길을 걷다 보면 유독 거미줄이 몸에 많이 걸리는 날이 있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과는 다르게 거미는 항문 근처에 있는 돌기에서 거미줄을 뽑아낸다. 나무나 풀, 가로등처럼 높은 곳에서 첫 번째 줄을 뽑아 바람에 날린 다음, 줄의 끝자락이 어딘가에 달라붙어 진동이 느껴지면 그 줄을 강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거미들이 집을 짓기에 한창일 때 그 곁을 지나간다면 우리도 거미줄을 고정할 대상 중 하나로 탐색되는 것이다.
거미는 집을 짓거나 먹이를 포획하는 단계에 따라 여러 종류의 거미줄을 만들어낸다. 한 마리 거미의 몸 안에 여러 개의 거미줄 샘이 있는데, 이곳에 액체 상태의 단백질 분자들을 저장해 두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샘에서 변형을 거쳐 섬유 형태의 거미줄을 분사한다.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는 바큇살 모양의 세로줄 골격을 먼저 만드는데 대체로 끈적거리지 않는 유형의 거미줄이다. 골격이 완성되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빙글빙글 돌아 들어오면서 동심원 모양의 끈적거리는 가로줄을 만든다. 날아다니던 비행체가 이곳에 걸리면 발버둥쳐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거미줄의 지름은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로 측정할 정도로 매우 가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 먹이가 걸려든다. 투명하고 가느다란 모습과는 달리 잡아당겼을 때 버티는 힘이 강철과 비슷하여 덩치가 큰 생물이 걸려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거미줄이 강철보다 밀도가 작기 때문에 같은 무게를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강철보다 몇 배 강한 인장력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줄에 가해지는 힘의 강도와 속도에 따라 점성과 탄성이 달라지고, 비틀렸을 때 모양이 변형되어 쉽사리 줄이 꼬이지 않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용품이나 수술용품에 사용될 신소재 개발을 위한 매력적인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주변의 다양한 생물들은 우리의 의식주를 위한 재료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고유의 특성을 응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공유하여 지속 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이유이다. 거미줄을 맞닥뜨렸을 때 소스라치기보다는 보호하고 분석할 생물자원으로 의연히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스스로 가지고자 한다. 가을. 밤 산책을 하기 좋은 날씨다. 거미도 본격적인 짝짓기를 위해 집을 짓기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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