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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진강'의 수난

입력
2021.09.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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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 건너로 보이는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파주=연합뉴스

1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 건너로 보이는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파주=연합뉴스

한국 하면 생각나는 강이 무엇이냐고 일본인에게 물어본다면 무슨 답을 할까.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데다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는 문구로 표현해왔으니 한강을 아는 사람은 많을 듯하다. 부산에 가본 적이 있다면 낙동강을, 한일 고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름인 금강 하류 백촌강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임진강을 아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한 곡의 포크송 때문이다.

□ 1960년대 후반 교토 출신 청년들이 결성한 포크 그룹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The Folk Crusaders)'는 당시 조선총련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임진강'을 번안해 싱글 앨범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분단의 아픔을 녹여낸 애절한 이 곡은 하지만 출시 직전 조선총련의 저작권 문제 제기와 당시 일본 공안 당국을 의식한 제작사의 판단으로 발매가 중지됐다. 그 직후 다른 가수가 부른 앨범들이 나왔지만 상당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곡이 방송을 탈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 북한 애국가를 지은 월북 작가 박세영이 작사한 이 노래가 사실상 금지곡 수난을 겪은 것은 일본에서만이 아니었다. 남쪽에서도 민주화 이전까지는 불리지 못했고, 북쪽에서는 서울 출생인 박세영이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라는 실향의 아픔을 담았다며 한동안 금지했다. 노래 한 곡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남북일 세 나라에서 나란히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이 노래의 울림이 크다는 방증이다.

□ 노래는 해금됐지만 북녘에서 발원해 휴전선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건 여전히 '뭇 새들'뿐이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정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등록자는 13만 명이 넘지만 생존자는 4만7,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 80세 이상 고령자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거의 매년 이어지던 상봉은 이후 단절되다시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2018년 여름 금강산에서 170가족이 만난 게 전부다. 우리 정부만 탓할 건 아니지만 추석을 앞두고 이산의 아픔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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