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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잘나가던 '검찰총장 정보조직'은 존폐 기로에 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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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잘나가던 '검찰총장 정보조직'은 존폐 기로에 섰을까

입력
2021.09.28 04:00
수정
2021.09.28 08: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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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범정기획관 출범, 핵심 요직 성장
'동향정보 수집' 지속된 비공식 기능 논란 속
문무일 땐 동향 업무 금지… 윤석열 땐 부활?
'고발 사주' 의혹에 박범계는 "범정 폐지 검토"
"일선에만 맡기면 권한 남용 우려" 목소리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배우한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배우한 기자

'검찰총장의 눈과 귀' '검찰 내 국정원'

한때는 '범정'이었고, 지금은 수사정보담당관실로 불리는 대검찰청 범죄수사정보 담당부서에 붙은 별칭이다. 검찰총장으로 향하는 모든 정보의 통로인 만큼 수사정보담당관실은 검찰 안팎에서 위세가 대단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수사정보담당관실이 최근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본래 목적인 범죄정보 수집 외에 폭넓게 동향 정보를 수집하고, 검찰총장 개인을 위해 사조직처럼 활동된다는 지적이 수년간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고발 사주' 의혹에까지 휘말리면서 수사정보담당관실을 보는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정치권의 단골 공격 대상이었던 범정은 문재인 정부 들어 규모가 대폭 축소됐고, 위상도 예전만 못하게 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급기야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사정보담당관실 폐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모 축소나 역할 정비 수준이 아니라 아예 '폐지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도대체 범정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을 해왔기에 사라져야 할 조직으로까지 거론되는 걸까.

요직 자리 잡았던 범정 현 정부에선 축소

대검 내에 범죄정보(범정) 담당 부서가 별도로 존재했던 역사는 길지 않다. 과거엔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전신인 대검 중앙수사국(1961년 출범)과 대검 특별수사부(1973년 출범)가 검찰총장 하명 사건의 수사와 정보 수집을 모두 맡았다. 정보 수집과 수사가 한 곳에서 진행된 셈이다.

정보수집 전담 기구가 만들어진 때는 대검 중수부 산하에 범죄정보관리과(이후 범죄정보과로 명칭 변경)가 설치된 1995년이다. 문민정부 들어 중수부가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성과를 보이며 위상이 높아지자, 대검에 각종 범죄정보가 모이게 됐고, 체계적인 관리 필요성이 생겼다.

범죄정보과는 1999년 중수부에서 독립해 별도 조직으로 승격됐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이라는 이름의 정보 수집 전담 기구로 거듭난 것이다. '범정'이란 별칭도 이때 만들어졌다. 차장검사급인 범죄정보기획관 아래로 범죄정보1·2담당관(부장검사급)과 3, 4명의 평검사 및 수십 명의 수사관들로 조직이 꾸려졌다. 직제상으론 대검 차장 직속이었지만, 사실상 검찰총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기구였다. 범정이 중수부와 함께 검찰총장 권한을 상징하는 요직으로 떠오르면서, 조직 내 '에이스'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배치됐다.

서울중앙지검 등 규모가 큰 일선 검찰청 특수부 산하에도 범죄정보과(현재는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정보과만 존재)가 생겼지만, 규모나 정보의 질 측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대검 범정을 따라오긴 힘들었다.

대검 범정에는 동향정보 수집 기능까지 있었다. 범정에선 부정부패·경제사범 정보수집 및 범죄정보 분석(1담당관)과 공안·선거 등 사건 관련 정보 수집(2담당관)을 담당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동향정보 수집은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범정의 핵심 역할이었다.

실제 범정을 거쳐간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1담당관이 순수 범죄정보를 생산하고, 2담당관은 정계·재계·언론계 등에서 동향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체계가 잡혔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 안팎에선 2담당관에서 범죄와 무관한 일반 동향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수집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지만, 검찰은 범죄에 관련된 정보 수집 활동만 해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2담당관을 지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범정에 대한 애착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범정의 역할이 축소되고 변경된 것도 결국엔 2담당관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문무일 전 총장은 2017년 취임 직후 범정 개편 작업에 착수했고, 이듬해 초 명칭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바꾸면서 동향정보 수집 업무를 폐지하겠다고 공표했다. 수사정보2담당관이 수사정보를 수집·관리하면, 수사정보1담당관이 이를 검증·평가하도록 기능도 세부적으로 손봤다. '범죄정보'라는 표현을 '수사정보'로 바꾼 것도 수사 관련 업무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지난해 9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범정 조직의 수장인 수사정보정책관(옛 범죄정보기획관)을 수사정보담당관으로 격하하고, 1·2담당관 기능을 합치면서 규모를 대폭 축소시켰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정치인 동향, 총장 민원 대행 논란까지

범정 직원들이 정상적 업무 범위를 벗어나 활동했다는 구체적 사례가 공개된 적은 거의 없다. 정기적으로 자료를 파기할 뿐 아니라, 윗선과 직접 소통하면서 '깜깜이'로 운영된 탓이다. 업무 지시도 담당자를 세밀하게 정해 '칸막이'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범정 활동을 둘러싼 우려는 1999년 출범 때부터 새어나왔다. 김대중 정부 때 범정에서 작성됐다는 문건들이 한참 뒤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문건들을 보면, 당시 검찰과 정치권의 관심사였던 '옷 로비 사건' 특검과 관련한 동향 및 수사 전망이 담겼고, 정부 정책에 대한 각계 반응과 정치인 동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박영선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에 우호적 발언을 한 의원들을 내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정에서 검찰총장의 사적 업무를 봐줬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2015년 김진태 검찰총장 소유 차량이 아파트 장애인 전용구역에 주차돼 있다는 민원이 접수됐을 때의 일이다. 김 총장은 차량 열쇠를 맡고 있던 경비원이 주차난 탓에 잠시 장애인 구역에 주차해둔 것이란 의견서를 냈고 구청도 이를 받아들여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문제는 당시 의견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게 김 전 총장 본인이 아닌 범정 직원이었다는 것이다. 대검은 "총장과 오랜 친분이 있어 민원 업무를 대행해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총장의 사적인 일처리를 범정에서 해도 되는 것이냐'는 뒷말이 나왔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7년 8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개혁 방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문 전 총장은 취임 후 첫 지시 중 하나로 '범죄정보기획관실 개편'을 선택했다. 연합뉴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7년 8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개혁 방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문 전 총장은 취임 후 첫 지시 중 하나로 '범죄정보기획관실 개편'을 선택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첫 검찰 수장인 문무일 총장 시절엔 검찰개혁 바람을 타고 동향정보 수집 활동이 잠잠했지만, 윤석열 총장 부임 후 슬그머니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윤 전 총장 핵심 징계 청구 사유였던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이나 최근 '고발 사주' 의혹은 윤석열 검찰의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업무 범위를 넘어선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변화 필요하지만 '무턱대고 폐지'엔 우려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검찰 안팎에선 범정 조직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2019년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업무 내용을 임의로 확대할 경우 외부에서 인지할 방법이 없어 통제장치가 전무하다"며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폐지를 권고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공개 정보가 많아지는 등 외부 환경이 급변한 점을 감안하면, 검찰 내 정보 부서의 기능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범정이 수집하는 정보에 대한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수사로 이어진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범정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대검의 정보수집 기능이 왜 필요한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다만 범정 축소 흐름을 "검찰 힘 빼기에 불과하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에 이어 정보수집 권한 역시 줄여가는 과정이란 이야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박 장관은 수사정보담당관실 폐지 가능성과 관련해 "국정감사 즈음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박 장관은 수사정보담당관실 폐지 가능성과 관련해 "국정감사 즈음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1

법조계에선 대검의 순수 범죄정보 수집 기능 폐지 움직임을 두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범죄정보 수집을 일선 검찰청에만 맡길 경우 오히려 권한 남용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대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검증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일선에서 중구난방으로 정보 수집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생산과 이를 활용한 수사가 같은 검찰청 내에서 진행될 경우 청부 수사 또는 무리한 수사로 이어질 위험도 높다.

결국 범죄와 무관한 동향정보 수집은 통제하면서도 순기능은 살리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범정을 거쳐간 검사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범정은 누가 어떻게 지휘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범정에서 근무했던 한 법조인은 "일선 수사의 성공 가능성과 공정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대검 정보 전담 조직은 필요하다"며 "제도 자체보다는 운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작용이 있다고 무조건 폐지를 밀어붙이기보다는 순기능만 살릴 방안은 없는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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