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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코로나

입력
2021.09.17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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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초 만났을 때만 해도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지난달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손주들의 통학을 도와주던 친정 부모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 때문에 내왕이 어려워지자 맨 먼저 오래 근무했던 정규직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제 근무가 가능한 곳으로 이직했다. 일종의 자발적 좌천이었다. 줄인 업무 시간만큼의 시간은 오롯이 가족들 뒷바라지에 투입됐다. 하지만 남편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원격수업에 뒤따르는 새로운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했지만, 식사 준비, 집안 청소, 아이 돌봄은 결국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그는 결국 일을 접었다. "일을 포기하는 것이 가정을 포기하는 것보다 충격이 적기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월 발간한 '코로나19 고용충격의 성별격차와 시사점'은 코로나 사태로 여성이 삼중고를 겪고 있음을 지적한다. 첫 번째 고통은 남성에 비해 불안정 저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이 더 쉽게 해고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초기 유행기인 2020년 3월 핵심노동연령(25~54세)의 여성 취업자 수 감소폭(전년 동월 대비 54만1,000명 감소)은 남성의 감소폭(32만7,000명)보다 훨씬 크다. 두 번째 고통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폭증한 돌봄 노동이 대두분 여성의 몫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 고통은 경력단절의 상실감 속에서 과중한 돌봄노동에 시달리면 심신의 건강이 유지되기 어렵고, 이는 가족의 정서적 중재자로 감정노동을 도맡아 하는 '어머니' 자리의 균열로 이어져 여성이 쉬이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기존의 여성 불평등을 심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성평등은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유엔(UN)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정책보고서(Policy Brief : The Impact of COVID19 on Women)를 인용하면서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여성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경고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 팬데믹이 초래한 여성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적 개입은 없다. 오히려 "전 국민이 단합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남녀를 갈라치는 페미니즘이냐?"라는 백래시의 구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당당하게 편승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만 도드라진다.

위드 코로나 국면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며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코로나19 이후 성평등에 대한 정책적 대결이 거의 없는 현실이 놀랍다. 대선주자들은 '이대남'의 표를 얻기 위한 퇴행적 공약을 만지작거리고, 진보를 표방하는 후보조차도 여성문제는 입장 표명조차 미온적이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돌봄 노동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집단적 학습을 제대로 경험했다면 돌봄의 사회적 배치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선거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는가.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이 여성문제에 대한 공약을 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전략적 투표를 할 때 여성문제를 대하는 후보들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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