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마약 '펜타닐'은 어떻게 미국과 중국 사이를 갈라놓았나

알림

마약 '펜타닐'은 어떻게 미국과 중국 사이를 갈라놓았나

입력
2021.09.19 11:00
0 0

[美 사회 좀먹는 中 마약 펜타닐]
①펜타닐 과다복용 美 사망자 37%↑
②멕시코 거쳐 화학물질→마약 둔갑
③현상금 58억…美, 펜타닐 주범 철퇴
④中 “새빨간 거짓, 남 탓 하지 마” 역공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따로 만나 회담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따로 만나 회담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이 조치는 가장 나쁘고 위험하고 중독성 있고 치명적인 물질에 대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2018년 1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마약 ‘펜타닐’을 규제하겠다는 시 주석의 약속에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화답하듯 2019년 4월 중국 공안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은 “펜타닐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고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무역전쟁이 한창인 미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비쳤다.

①펜타닐 과다복용 美 사망자 37% 증가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 사망자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 사망자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0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9만3,331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255명에 달한다. 미국에서 교통사고와 총기사고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 중 6만9,710명은 복용한 약물이 마약성 진통제로 드러났다. 2019년 5만963명에서 1년 만에 37% 급증한 수치다. CDC는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생활 리듬이 깨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스트레스가 증가한 영향이 컸다”며 “미국인들이 과다복용한 마약성 진통제의 대부분은 펜타닐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펜타닐은 중독성이 헤로인의 최대 100배에 달한다. 당초 암환자나 수술환자를 위한 진통제로 개발됐다. 환자가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지만, 불법 경로로 유통될 경우 펜타닐 1㎏이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살상력을 지녔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서구 각국은 날로 늘어나는 펜타닐의 주요 공급처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원래 헤로인을 일컫던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라는 별칭이 펜타닐에 붙을 정도다. 헤로인에 펜타닐을 섞어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②태평양 건너 美 노린 중국산 펜타닐의 공습

미국 펜타닐 유입 경로

미국 펜타닐 유입 경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중국산 펜타닐의 공습에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UCESRC는 미국 의회가 2000년 10월 만든 초당적 자문기구로 중국과의 경제, 무역 관계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매년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에 따르면 중국산 펜타닐이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에 침투하는 경로는 두 가지다. 우선 순도 90% 이상으로 정제된 펜타닐을 1㎏(약 2.2파운드) 이하 소량으로 포장해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다. 하지만 적발 위험이 커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미 세관(CBP)은 “적발 규모가 2018년 278파운드에서 2019년 11.58파운드로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인근 멕시코를 통한 펜타닐 유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산 마약 원료를 화학약품으로 위장해 멕시코로 실어 나른 뒤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적발 규모가 2018년 1,500파운드에서 2019년 2,660파운드로 크게 증가했다. 멕시코 당국은 “지난해 펜타닐 불법 제조와 저장시설 적발이 전년보다 6배 늘었다”고 밝혔다.

중국과 멕시코의 공생관계가 미국 사회를 좀먹는 셈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중국을 통해 자금을 안전하게 세탁하고, 중국은 안정적 마약 수출 활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마약단속국(DEA) 지부장을 지낸 데릭 몰츠는 “중국과 멕시코 카르텔의 동맹이 치명적인 펜타닐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미국 내 펜타닐 유통과 밀매는 서구에 맞서 중국 공산당이 수행하는 무제한 전쟁의 완벽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③현상금 58억…美, 펜타닐 유통 주범 때려잡기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거리에서 한 남성이 헤로인과 펜타닐을 섞은 주사기를 팔에 꽂고 있다. 필라델피아=AFP 연합뉴스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거리에서 한 남성이 헤로인과 펜타닐을 섞은 주사기를 팔에 꽂고 있다. 필라델피아=AFP 연합뉴스


미국이 강력 대응에 나섰다. 본보기로 ‘마약왕’을 잡으러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30일 중국인 남성 장젠(43)을 지명수배했다. 검거에 도움이 되는 제보에 대해 이례적으로 500만 달러(약 58억4,000만 원)를 주겠다고 공지하며 신고를 당부했다.

국무부는 장씨가 2013~16년 마약 유통조직을 이끌면서 진통제 펜타닐 등을 유통해 미국인 4명이 과다복용으로 숨진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 사이 국제우편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펜타닐을 보낸 횟수는 수천 건에 달한다.

앞서 2017년 미 법무부는 장씨를 기소했다. 미국에서 펜타닐 유통 혐의로 중국인이 기소된 건 그가 처음이다. 장씨는 2016년 중국에서 체포됐다가 2017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풀려나 4년째 붙잡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부의 실질적, 암묵적 용인이 없으면 마약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처럼 대량의 펜타닐이 미국으로 유입돼 활개치는 건 양국 관계가 그만큼 험악하다는 것이다.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는 “미국 사회를 파고드는 펜타닐은 미중 관계의 바로미터”라며 “중국은 불법 마약 생산과 수출을 단속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④中 “새빨간 거짓, 남 탓 하지 마” 역공

멕시코 사카테카스주의 펜타닐 제조공장 인근 마을 전경. 사카테카스=AP 연합뉴스

멕시코 사카테카스주의 펜타닐 제조공장 인근 마을 전경. 사카테카스=AP 연합뉴스


중국은 미 UCESRC 보고서와 중국인을 범죄자로 지목해 현상 수배한 것에 발끈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보고서와 관련 “일부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이 여전히 ‘미국 펜타닐은 주로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식의 허위정보를 과장하고 있다”며 “문제는 미국인들의 과도한 약물 투약”이라고 반박했다. 또 “중국은 멕시코나 미국으로 밀수출되는 불법 화학물질을 발견한 적이 없다”면서 “미국의 주장은 매우 무책임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오히려 “2018년 트럼프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은 책임을 다하고 있다”며 “중국의 펜타닐 통제는 엄격한 반면 미국의 관리는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는 노골적으로 장씨 수배령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왕원빈 대변인은 “수배된 중국 국민에 대한 현상금을 즉시 철회하고, 중국에 대한 비방과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2016년부터 장씨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했지만, 당시 펜타닐은 중국에서 마약류가 아닌 일반 화학물질로 분류돼 처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도 미국이 뒤늦게 책임을 떠넘기며 현상금을 미끼로 문제를 부풀린다는 불만이 담겼다.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에 “미국과의 마약단속에 협조하는 중국의 노력을 대립으로 몰아가는 건 위험한 신호”라며 “이번 사태는 양국 간 협력의 범위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