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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한 커플 동거·돌싱 짝 찾기…MZ세대가 '연애 리얼리티'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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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한 커플 동거·돌싱 짝 찾기…MZ세대가 '연애 리얼리티' 빠진 이유

입력
2021.09.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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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과 이혼' 헤어짐 이후 주목
이혼 이후 시뮬레이션?
관찰 통해 연애 욕구 대리 만족?
연애 안(못) 하는 세대의 역설


화제가 된 티빙의 환승연애. 유튜브 캡처

화제가 된 티빙의 환승연애. 유튜브 캡처


"헤어진 연인과 한 집에서 살 수 있습니까?"

머릿속으로 이런 상상, 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런 발칙한 질문이 요즘 예능에선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헤어진 전 애인과 함께 살고, 이혼한 사람들이 새 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혼 남녀의 데이트와 동거를 다룬 '돌싱글즈(MBN)', 결별 남녀가 모여 살며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환승연애(TVING)'가 대표적인데요.

돌싱글즈는 12일 3.4%의 최고 시청률로 시즌1 마지막 에피소드가 공개됐고, 시즌2 제작 계획을 알렸습니다. 이혼과 육아 등 현실적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동거를 통해 부딪치는 커플들의 고민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평가가 줄을 잇습니다. 한 지역 맘카페에서 누리꾼들은 "출연진들 맘속에 상처, 아픔들이 보인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며 보게 된다"(200****), "말하기 힘든 부분일텐데 담백하고 솔직해서 좋다"(sys*****)며 감상을 전했습니다.

환승연애 역시 전 연인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소중함 등의 감정이 고조되는 모습으로 젊은 시청층 사이 높은 몰입을 끌어냈습니다. 유튜브와 네이버 TV 누적조회수 2,000만 뷰를 돌파했습니다. 이별에 임박한 연인들의 솔직한 현실 연애를 그린 '체인지데이즈(카카오TV)'도 인기를 끌며 시즌 2 제작에 들어갈 예정인데요.

젊은 이용자가 많은 한 익명 기반 이슈 커뮤니티에는 "최근에 헤어져서 감정이입하면서 보고 내려왔더니 허망하다. 진짜 헤어지면 남이야.", "계단에서 무너져 우는 거에 영업 당해서 그 장면 볼 때마다 같이 우는 중" 등 스스로를 과몰입 시청자라 부르는 누리꾼들이 여럿 보입니다.

지금까지 예능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던 이혼과 헤어짐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늘고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돌싱, 화려한 싱글이 될 수 있을까

돌싱글즈 영상 썸네일. 유튜브 캡처

돌싱글즈 영상 썸네일. 유튜브 캡처

방송가에서 이혼은 '사랑과 전쟁(KBS)'에서나 다루는 정도였습니다. 다들 말 꺼내기 꺼려지는 이혼을 굳이 프로그램 소재로 삼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2021년 예능에서는 이혼을 키워드로 다루고 있습니다. '돌싱글즈(MBN)', '신발 벗고 돌싱포맨(SBS)', '용감 솔로 육아 ? 내가 키운다(JTBC)'가 그 예입니다.

이혼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이 그 배경으로 볼 수 있죠. 이혼은 더 이상 금기어도 생소한 일도 아닙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사회 2019'에 따르면 한국의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율)은 OECD 평균 이혼율인 1.9명보다 높은 2.1명입니다. 1991년 1.1명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죠. 과거에는 '애 때문에 참고 산다'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이혼을 개인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선택으로 여기죠.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이혼 사례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이혼 커플을 바라보는 정서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미혼이 아닌 돌싱에겐 현실적으로 동거가 필요하다는 인식까지는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이혼이 쉬워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혼 여성 이용자가 많은 한 커뮤니티에는 "주변에 이혼했다는 거 절대 말하면 안 돼요. 그 순간부터 업신여깁니다.", "이혼하고 싶은데 아이가 다섯 살이에요. 아이 클 때까지 버텨야 하나요" 등 이혼을 무겁게 고민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남성 누리꾼 역시 "결혼 2년 차인데, 이혼 고민 됩니다. 이혼남 인식 나쁜가요"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이혼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모습입니다.



돌싱글즈에 대한 네티즌 반응. 네이버 맘카페 맘스캠프 캡처

돌싱글즈에 대한 네티즌 반응. 네이버 맘카페 맘스캠프 캡처

이런 상황서 기혼자들에게 이혼 이후 상황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렇게 와닿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혼한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이혼 역시 쉽지 않다"며 "이혼 이후에 대한 상상을 돌싱콘텐츠가 채워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떨지 자신의 상황을 투영해본다는 건데요.

이혼에 대한 고민은 미혼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상학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혼이 증가하고 이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분위기가 형성된 사실 이면에 결혼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결혼이 순응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되면서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이 더 커졌다"며 사람들이 이혼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결혼 관계는 대상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 중요한 문제를 함께할 대상을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위 실패했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돌싱 콘텐츠를 통해 관찰한다는 것이죠.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중요한 인생의 지점으로 여겨집니다. 허수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사회복지학)는 "미혼 여성은 결혼에 대한 가늠을, 기혼 여성은 이혼 이후에 대한 대리만족을 해보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혼, 기혼 여성들 모두가 돌싱 콘텐츠에 관심 갖는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연애 안(못) 하는 세대의 역설··· 매운 맛 관찰 예능 등장

환승연애에 대한 네티즌 반응. 트위터 캡처

환승연애에 대한 네티즌 반응. 트위터 캡처

미혼 남녀의 로맨스 관찰 예능은 한층 매운맛이 가미됐습니다. 커플 성사 과정에서 몽글몽글한 설렘에 초점을 뒀던 '짝(SBS)', '하트시그널(채널A)'을 넘어, 이제는 엑스(Ex·전 애인)와 함께 출연하며 질투, 설렘 등의 다양한 감정이 교차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정덕현씨는 "엑스를 다시 만난다는 인위적 상황 덕분에 집중도가 높아질뿐 아니라 감정이입도 쉽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라고 밝혔네요.

다만 이렇게 결별이라는 다소 자극적 소재가 예능에 등장한 데 대해 허수연 한양대 교수는 "헤어짐 자체보다는 연애물의 인기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맨스 관찰 예능의 인기가 지속되는 와중에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열려는 시도 속에 등장한 이야기일 뿐, 연애물이라는 큰 틀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혼 밈. KBS 해피투게더 캡처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혼 밈. KBS 해피투게더 캡처

그런데 젊은층 사이 연애물 인기의 고공행진은 이들이 도통 연애하지 않는다는 통계와 꽤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4B(비혼·비출산·비연애·비성관계를 뜻하는 신조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연애와 결혼에 회의적인 이들이 많습니다.

2019년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전국 만 15~34세 미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MZ 세대 여성 10명 중 4명은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죠. 2020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전국 25~59세 1인 가구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대 여성이 "결혼 의향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15.5%로 전년도 4.2%에서 크게 증가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젠더 이미지. 구글 캡처

젠더 이미지. 구글 캡처

이렇게 20대 여성이 연애와 결혼에 거리를 두는 이유는 젠더 이슈에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설문도 많습니다. 올해 시사인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성범죄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응답자의 87.6%는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답했습니다. 또 52%의 여성은 아는 사람으로부터도 성범죄에 노출될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반면 20대 남성은 같은 설문에서 61.1%의 비율로 '한국 여성들은 성범죄 당할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같은 연령대 여성 7.9%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20대 내 성범죄에 대한 인식 격차는 꽤 큽니다. 젠더 의식은 20대 여성에게 허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 연애에 있어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환승연애 밈.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환승연애 밈.

그렇다면 연애와 결혼에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는 20대 여성이 로맨스 관찰 예능을 소비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김상학 교수는 "결혼 이전에 있는 함께 감정을 나누고 병들어가는 동반자를 찾는 욕구는 시큰둥해지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설문 결과는 결혼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 존재하는 연인이나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허수연 교수는 "20대 여성은 연애가 낭만적이지만은 않고 폭력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집단"이라며 "연애와 결혼에 대해 갖는 불안감으로 이상적 연애를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 관찰 예능을 통해 남들이 연애하는 걸 구경하면서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허 교수는 이어 20대 여성이 결별 후 갖는 구남친에 대한 공포나 만남 이전에 갖는 두려움 등의 감정을 관찰 예능이 어느 정도 해소해주게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허 교수에 따르면 만남과 헤어짐 등 내밀한 연애는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이 사적 공간은 공권력으로부터 격리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나라는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약하기 때문에 여성은 연애나 결혼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여성 중에서도 연애를 자주 하는 사람과 거의 안 하는 사람들로 나뉜다"며 "자주 연애하는 이들은 구남친과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만남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안 하는 사람은 연애 시작도 전에 가지는 두려움들을 조금은 해소하여 받아들이게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밈을 활용해 환승연애 후기를 전한 한 네티즌의 게시글. 인스티즈 캡처

밈을 활용해 환승연애 후기를 전한 한 네티즌의 게시글. 인스티즈 캡처

반면 20대 남성 시청자들이 소비하는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허 교수에 의하면 요즘 20대 남성의 연애는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야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었다지만, 요즘에는 그랬다가는 스토커 되기 십상입니다. 대시해도 여성들이 잘 응해주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들은 정말 연애를 하고 싶지만 못 하는 집단"이라며, 이런 이유로 로맨스 관찰 예능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라 밝혔습니다.

연애를 안(못)하는 세대 사이에서 로맨스 관찰 예능의 인기가 지속되며, 대리만족 욕구가 더욱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채워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돌싱글즈와 체인지데이즈는 모두 시즌 2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연애와 결혼을 변주한 매운맛 로맨스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녀 관계 설정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전세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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