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환자도 코로나 의심... 이송에 '발 동동'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 가는데, 환자를 받아 주는 병원이 없어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70일째 네 자릿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촌각을 다투어 환자를 이송하는 119구급대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미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병원들이 응급실 입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의정부소방서 구급대원 A씨는 6월 6일 낮 12시쯤 ‘80대 남성이 어지러움증 증세로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곧 구급차에 태워 심정지에 대비한 응급처치를 하면서 병원으로 향했지만, 병원 여섯 곳이 잇달아 손사래를 쳤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환자를 받아 주는 병원을 찾아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하기까지 19분을 길에서 허비했다.
A씨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응급 환자를 태우고 뱅뱅 돌 때면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며 “50곳에 가까운 병원에서 정신발작 환자 하나를 받아주지 않아 5시간 만에 인천의 한 병원에 옮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해당 병원은 의정부에서 70km 떨어진 병원이었다.
남양주소방서 구급대원 B씨도 4월 약물중독 50대 여성환자 이송 때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약물 환자라 위세척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병원 10여 곳이 접수를 거부해 2시간 뒤에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위세척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응급처치가 필요해도 병원에서 ‘안 돼요’ 하면 그만”이라며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반을 넘기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병원들이 의심 환자 수용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구급대원들은 이처럼 길 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애를 태운다. 방역지침상 코로나19 의심 환자 이송 시엔 다른 환자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응급실 내 별도의 격리 공간에 배정하게 돼 있지만, 병원들이 격리 공간 확보에 나서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뾰족한 대책 마련이 늦어지는 사이 이송 지연으로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하는 환자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의정부에서 40분을 떠돌다 응급실에 입원했으나 끝내 숨진 30대 심정지 환자가 대표적이다. 지난 2일 강원 원주에선 코로나 자가격리자인 60대 남성이 뇌출혈 증세로 이송되던 중 1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지 못해 심정지에 빠진 일도 있었다.
병원 측은 “코로나 의심 환자가 늘면서 응급실 내 치료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환자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구급대원은 병원이 ‘코로나19 의심 환자’ 핑계로 치료와 관리가 까다로운 응급환자를 고의로 피한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한다. 중증 의심환자일수록 병원들이 더 높은 비율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위급 상황”이라고 강력하게 호소하면 그제야 환자를 받아주는 사례 등이 그 같은 추측의 배경이다.
경기지역에서만 하루 1,000여 건이 넘는 구급환자 이송이 이뤄지고 있지만, 응급실 내 코로나 의심환자 치료 병상(베드)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병원에 응급환자 이송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의심 환자라는 이유로 환자 이송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구급대원 사이에서 특정 병원이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사례를 수집,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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