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최시현 "'부동산, 여성 책임' 문화적 압력"??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출간
한국 사회에는 여성들로 하여금 ‘주택실천(부동산)을 열심히 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문화적 압력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경제 개발에 나서면서 국민에게 제시한 핵심축부터가 생계 부양자 남성과 가정주부 여성이 하나의 ‘모범적 도시 중산층’을 이루는 것이었거든요. 남성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여성은 집에서 재산을 불리고, 더 좋은 집을 사고, 그것을 자녀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이죠.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부동산 투기는 원래 여성들이 해 왔던 일이다.' 여성학을 연구해 온 최시현 교수는 최근작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에서 이러한 통념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국가와 가부장적 사회가 1950~1980년대 경제 개발 과정에서 '현모양처라면 가정을 가꾸는 한편, 나아가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성들에게 불어넣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여성은 원래 이기적이고 집에 집착하는 존재라서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는 서사를 깨뜨린다.
여성들에게 내 집 마련에 나서라고 장려한 한국사회
최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수도권에서 집을 사고 팔았던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모두 37명을 인터뷰했고 책에는 25명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들은 집을 온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가꾸면서 한편으로는 남편이 벌어온 돈을 관리하고 불려서 내 집 마련에 나섰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장려한 것이었다. 정부는 금융 정책과 청약제도 등을 통해서 여성들이 소위 '정상가족' 만들기에 동참하기를 유도했다. 아파트에서의 여성의 삶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분양 광고들에서는 과거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어떠한 역할을 기대했는지가 드러난다.
"여성이 부동산에 매달린 이유는 성 역할 고정관념 때문"
그러나 부동산에 매달릴수록 여성들의 삶은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계급구조에 종속됐다. 8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난 최 교수는 “여성들은 양육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책무로 받아들이고 투기적 주택실천까지 감수했지만 상징적 가장의 위치는 여전히 남성에게 있었다”고 지적했다. 시장을 공부하고 발품을 팔았던 아내들의 역할은 사회적으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최 교수는 “여성들이 부동산 투자에 매달리는 것은 일터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적절한 인정을 못 받으면서 자신의 사회적 역량과 지위를 자녀 교육이나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면서 “이 또한 성 역할 고정 관념을 유지해 온 한국 사회의 젠더 불평등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편법과 탈법 비난은 여성에게 더 쏟아져
게다가 ‘가족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저질렀던 편법과 탈법이 드러나면 비난은 여성들에게만 쏟아지기 일쑤였다. 강남 개발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장에 나타난 여성들에게는 ‘복부인’이라는 여성 혐오 꼬리표가 붙었다. 아내가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을 때 ‘집에서 살림하는 줄 알았더니 돈을 벌었네’라며 칭찬하던 남편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휘말린 정치인들이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남성 가장도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증식하기를 욕망하고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그에 따르는 실패에 책임을 지기보다 부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면서 "여성은 이기적으로 사리사욕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불법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당시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여성들 가운데 스스로를 '복부인'으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결승선 없는 경주…마음의 고통만 커져
무엇보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한국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꿈꿨던 ‘내 집 마련을 통한 안정적 중산층 유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불안에 시달렸다. 이는 최 교수가 인터뷰한 여성들에게서 집의 가격과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서였다. 최 교수는 “도시에 집을 가졌고 자녀들을 잘 길러낸 분들마저도 자신의 삶을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면서 “집값이 올랐지만 그 집을 팔아 봤자 어디로 가겠느냐. 집값이 다 올랐는데 어디에 새로운 집을 사겠느냐, 자녀에게는 무엇을 물려줄 수 있겠느냐라는 강박적 불안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들은 결승선이 계속 멀어지는 경주에 참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가족을 위해 집을 사고 가꿨지만 ‘안정감을 느끼는 중산층’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은 불안에 시달리면서 집을 사고, 팔고, 좋은 지역을 향해 거처를 옮긴다. 정주하는 삶을 꿈꾸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최 교수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임금 노동보다 자산 투자에 집중하게 되지만, 서로의 투자 이익을 계속해서 비교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방식으로 투기 자체가 끝나지 않는 경쟁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30대의 상황은 또 다를 것"
부동산을 여성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현재 30대에 접어든 세대에게서는 나타나지 않거나 ‘굉장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맞벌이가 보편화된 세대일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경제 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의 증가와 페미니즘의 대중화도 한 이유다. 그럼에도 최 교수는 “젊은 여성들 가운데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겠다는 이유로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 여성들과 동기는 달라도) 사회적으로는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내가 가진 자원이 다른 사람들의 주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집에 얽매이지 않을 사회적 구조 만들어야"
부동산이 여성의 일이 된 과정을 안다고 내일부터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뭔가 구조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여성들이, 남성들이,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정책도 바뀔 수 있다. 최 교수는 "부동산이 경제적 이익을 주는 정보나 대출 접근성의 불평등이 낳은 계급 재생산 통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 연구였다"면서 "정책적으로는 공공주택 공급이 적기 때문에 집을 실존적 필요보다 고부가가치의 투자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도 책에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집을 사야만 안정적이고 그것을 계속 넓혀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좋은 집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삶이 그렇게 안정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평생 집을 갖지 않아도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욕망을 갖지 않을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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