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계획 변천사>
한적한 시골마을 판교 개발 영향 땅값 들썩
노무현 정부 전원단지 조성 성남시에 제안
MB "LH 민간과 경쟁 말라" 민간개발 독려
이재명 공공개발 추진…?시의회 동의 안 해
지방채 발행 못하자 민관합동 절충안 택해
“대장동은 판교보다 용인에 더 가까워요, 그냥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경기 성남시 대장동 인근에서 20년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한 김모(60)씨는 대장동에 쏠린 세간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김씨의 말처럼 대장동에서 판교신도시까지는 버스로 10분 이상 가야 하지만, 용인시 고기동까지는 걸어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될 정도로 지척이다.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동네였던 대장동은 2000년대 초 개발 차익을 노린 외지인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판교'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판교신도시 서쪽에 있다는 이유로 ‘서판교’로 불렸고, 2004년 이후 본격적인 개발 바람이 불었다.
개발 방식을 두고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성남시와 정부가 주도한 공공개발이 대세였지만, 이내 민간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장동 개발을 공영방식으로 재추진했으나 재원이 부족했고, 결국 민관합동 개발이란 우회로를 찾았다. 그러나 사업 설계 과정에서 초과 수익 환수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개발 이익을 줄기차게 노려온 민간업자들의 배만 불린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판교 영향 땅값 뛴 대장동 공공개발 추진
대장동은 예전부터 투기세력이 판을 치던 땅이었다. 정부는 녹지로 지정해 개발을 제한하던 판교 지역을 1998년 개발 가능한 땅으로 바꿨다. 성남시는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서 924만㎡(약 280만 평) 규모의 땅에 대해 개발예정 용지 승인을 받았다. 2003년에는 판교 개발계획이 확정되면서 토지 소유주를 대상으로 보상작업이 진행됐다. 이때 3,000여 명이 토지 보상비를 챙겼다.
판교에 돈이 풀리자 지근거리에 있는 대장동도 들썩였다. 1인당 수억 원에서 최대 200억 원에 이르는 땅 보상금을 받은 이들은 ‘서판교’로 몰렸다. 2000년 3.3㎡당 25만 원 수준이던 대장동 토지는 2003년에는 150만 원대로 뛰었고, 2004년 초에는 250만 원을 호가했다. 이 지역 평균 공시지가(3.3㎡ 90만 원)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
판교신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는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토지공사(현 LH의 전신)는 판교 인근의 난개발을 막고자 대장동을 전원주택 단지로 개발할 것을 성남시에 제안한다. 이는 성남시가 2005년 공고한 ‘2020성남 도시기본계획’에 반영됐다.
2005년부터 본격화한 대장동 전원주택 택지개발 사업부지 규모는 128만㎡로 현 대장동 사업부지(92만㎡)보다 30% 정도 넓었다. 현재와 같은 면적으로 축소 조정된 시기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이었다.
MB “민간과 경쟁 말라” → 이재명은 공공 강조
그러나 치솟은 땅값 때문에 LH가 대장동 지구 토지를 모두 매입해 사업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경기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당시 예상된 대장동 토지매입 가격은 1조2,000억 원에 달했다. LH는 당시 100조 원 넘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고, 하루 이자 상환액만 100억 원 정도였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 주도 개발 방식의 재점검에 나섰다. 그는 2009년 공공이 민간 회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 사이 대장동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 발언을 기화로 민간 개발을 시도한 시행사들은 3.3㎡당 평균 600만 원에 대장동 땅을 사들이려고 했다. 2004년 호가보다 2배 이상 높았다. LH는 2010년 6월 대장동 공공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민간 개발 바람이 불던 대장동에 다시 공공 개발 논의가 부상한 시점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한 2010년 7월부터다. 이 시장은 성남시 대형 개발사업을 공공개발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재원 문제 해결을 위해 꺼낸 카드는 4,500억 원 규모의 지방채 발행이었다.
하지만 성남시 의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공공 주도 개발사업은 실패할 것이란 논리였다. 한나라당의 박완정 시의원은 2011년 11월 21일 본회의에서 "성남시보다 훨씬 경험 많은 아파트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민간기업도 수익 내기가 어려운 요즘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이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그 수익으로 빚 갚겠다는 집행부 얘기를 누가 믿겠냐"며 성남시를 비판했다.
시의회 회의록 등을 살펴보면 2011년 10~12월 계속된 성남시의 지방채 발행 움직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의회 동의 없이는 지방채 발행은 불가능했기에 공공 개발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민관개발 우회로 찾았지만 사업 설계 의문
지방채 발행에 실패한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 재원조달을 위해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모델이 민관합동 개발이다. 민간을 끌어들이지만, 공공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재명 시장 주도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2014년 1월 출범한 배경이다.
성남도시공사의 첫 번째 임무는 다른 지자체의 민관합동개발 사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하남도시공사처럼 사전 이익을 우선 보장받고 공사 지분에 비례해 초과 수익을 거두는 방법도 검토했다.
그러나 성남도시공사는 하남처럼 하지 않았다. 대장동 개발의 초과 이익은 모두 민간 몫이 되도록 설계됐다. 민간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이 민관합동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 지분을 갖도록 했다. 성남도시공사가 50% 지분을 가졌지만, 사전 이익을 챙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기에 초과 수익은 7% 지분을 보유한 민간 사업자에게 모두 돌아갔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4,040억 원의 막대한 배당금 수령이 가능했던 이유다.
검찰은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책임자로 지목받는 성남도시공사 전 기획본부장인 유동규(52)씨를 3일 배임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2004년 이후 공영→민간→공영→민관합동으로 이어진 대장동 개발 방식의 변천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배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대장동 개발 역사를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