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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에게 깃든 천사

입력
2021.09.09 18:00
수정
2021.09.09 18:21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건용 '신체드로잉-천사들'. 1997, 캔버스에 유채. 259x384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건용 '신체드로잉-천사들'. 1997, 캔버스에 유채. 259x384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일보 자료사진

천사(天使)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초월적 존재다. 영어 엔젤(angel)의 어원은 ‘전령’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안겔로스(angelos)라고 한다. 어원대로라면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중개자 정도 되는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천사를 인격을 갖춘 구체적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에서 대천사들에게 미카엘이나 가브리엘, 라파엘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렇고, ‘아기천사’ 같은 관념도 마찬가지다.

▦ 인격화한 천사 관념은 불교나 이슬람교 등 대부분 종교는 물론, 동서양 문화 속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도 산신령 할아버지나 삼신할매, 조상신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인격화한 영적 존재에 대한 오랜 믿음이 있어왔다. 하지만 신학에서는 천사를 인간보다 높은 존재로 창조된, 순수한 영적 존재로 본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는 순수형상으로서 질료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서도 신령님이나 관세음보살이 인간을 돕는 기적을 행할 땐 구체적 인격을 초월한 영적 존재로서 다양한 양상으로 작용한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예전에 할머니들은 가까스로 횡액을 면하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영적 존재의 도움에 감사하는 “나무 관세음보살”을 주문처럼 외곤 하셨을 것이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방탕한 체코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점차 유태인들의 구원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그에게 깃든 천사의 임재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 필자도 ‘천사의 신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어릴 적 하천에서 멱을 감다가 급물살에 휘말려 실신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자 어떤 강한 힘이 나를 건져 내 물가로 이끌었는데, 기억 속엔 햇볕에 까맣게 탄 한 소년의 얼굴이 파란 하늘가에서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던 찰나의 영상뿐이다. 최근 경북 울진의 초등학교 5학년 소녀가 불영계곡 물에 빠진 9살 어린이와 7살 동생을 순식간에 구했다는 소식에 새삼 천사를 떠올린다. 어릴 적 나의 그 소년이나, 이번에 아이들을 구한 소녀에겐 아주 잠시나마 천사가 깃들었던 거라고…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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