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가 키운 아프간 특수군, '카불공항 경비' 대가로 무엇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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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가 키운 아프간 특수군, '카불공항 경비' 대가로 무엇을 얻었나

입력
2021.09.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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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이 국외 탈출을 위해 공항 담장 밖에 몰려든 아프간 민간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지난달 20일(현시시간) 전후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북부 게이트 인근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닷새 전 카불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을 피해 공항에 몰려든 탈출 행렬만으로도 혼돈스러웠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총격·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상황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외부로 퍼져 나갔다.

카불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카불 시민 하룬(가명)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그후 연락이 끊겨 몹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며칠 뒤 “제3국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가 들려준 출국 당시 상황은 이랬다.

“공항이 너무 혼잡해서 아프간 군인들이 사람들을 가로막고 통제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필수 서류 및 보안 검사 등을 마치고) 공항 진입을 허가받고 나면 다시 게이트가 닫히는데, 공항 밖 사람들은 벽이라도 타고 넘어가려 아우성이었다. 그걸 막으려는 공중 사격도 있었다. 아프간군과 미군이 무력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SNS 영상 속 장면과 아주 비슷한 하룬의 이 같은 전언에 생생히 담긴 카불 공항의 혼란상을 수많은 언론들은 날것 그대로 보도하는 데 바빴다. 이런 상황을 일으킨 주체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시 도래한 ‘탈레반 통치 시대 아프간’은 오로지 ‘카불 공항’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알려졌고, 방송 화면은 온통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뿐이었다. 카불에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프간전쟁의 주무대이자 이 나라 인구 4분의 3이 거주하는 카불 밖 지방 상황은 어떠한지, 어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 오로지 ‘카불 공항 대혼란’만 부각됐다는 얘기다.

제대로 추궁하고 비판해야 할 또 다른 이슈들도 그렇게 묻혀 버렸다. 예컨대 지난달 26일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카불 공항 테러 당시 “(패닉에 빠진) 미군이 총격을 가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영국 BBC방송 보도는 재생산되지 않았다. 반면 미군 사망자 13명을 영웅시하는 보도는 수없이 쏟아졌다. 자살 폭탄 테러 한 건으로 무려 170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는 것도 의아할뿐더러 총에 맞은 사망자도 많았다는 점에서, 미군 또는 아프간군의 총격을 충분히 의심해 볼 만했다. 그런데도 국내 한 라디오프로그램은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카불 공항 상황을 전하며 “탈레반이 총을 쏘고 있다”고 단정 지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지난달 23일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주변에 몰려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하지만 그들은 탈레반이 아니다. 앞서 하룬이 언급했던 ‘아프간 군인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키운 코만도 특수부대, 이른바 ‘NDS 제로 유닛’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대 일부가 탈레반의 카불 입성 직후부터 공항에 배치돼 미군의 급박한 철수 작전을 도왔다. 작전을 마치고 나면 미국행 비행기에 우선순위로 탑승하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NDS 제로 유닛에서 NDS는 아프간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ational Directorate of Security)’을 지칭한다. 조직도 체계상 아프간 보안군(ANSF)의 하위 조직이라는 점이 시사하듯, NDS는 정보 수집 활동만이 아니라 대(對)테러 전쟁에도 직접 가담해 왔다. NDS의 자체 특수작전 부대가 바로 NDS 제로 유닛이다. 지역별로 4개 부대가 있다. 카불을 포함해 파르완, 와닥, 로가르 등 중북부는 NDS-01, 동부 낭가르하르와 파키스탄 접경 지역은 NDS-02, 탈레반 탄생지인 칸다하르는 NDS-03, 코스트와 누리스탄, 쿠나르 등 동북부는 NDS-04가 각각 담당한다. ‘코스트 보호군(KPF)’이라고도 불리는 코스트 지역 부대의 경우 지난달 16일 탈레반에 투항했으나, 다른 부대는 공항으로 집결해 미군의 철수 작업을 돕고 우선 철수 대상에 올랐다.

이와 관련,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달 3일 한 아프간 여성이 공항에서 겪은 피해 사례를 소개했다. 5년간 미 국무부 및 미군 통역사로 일했던 파티마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아프간특별이민비자(SIV)를 챙겨 공항으로 갔으나 NDS 제로 유닛 군인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그는 “군인들이 가족을 마구 때렸다. 다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또 군인들이 공항 통과 조건으로 1인당 5,000달러를 요구했으며, 서류와 신분증이 없는 사람을 돈을 받고 들여보내 주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2019년 10월 21일 마크 에스퍼(앞줄 왼쪽 두 번째)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아프가니스탄 특수부대인 캠프 코만도를 방문해 군사 훈련을 참관한 뒤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9년 10월 보고서에서 “NDS 제로 유닛은 NDS와 아프간군 또는 미군에 보고하는 체계가 아니라, 오로지 CIA에 의해 모집되고, CIA한테서 훈련받으며, CIA로부터 장비를 제공받는 CIA 관할 조직”이라고 밝혔다. 주로 ‘공습을 동반한 야간 급습’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는데 현장 사살, 생포 후 고문 등 극단적 인권 침해로 악명이 높다. ‘죽음의 여단’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8년 와닥에서 학생 12명이 숨진 ‘마드라사(이슬람학교) 학살 사건’은 NDS 제로 유닛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들 중 하나다. 미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는 “그 사건 이후 1년 동안 10차례 야간 급습으로 민간인 5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희생자 중에는 8세 어린이도 있었다.

지금은 얼굴이 공개된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과거 자신의 SNS에 NDS 제로 유닛의 작전을 ‘전쟁범죄’라고 격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탈레반은 NDS 제로 유닛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했고, 그에 맞선 결사 항전을 독려하면서 새 병사들을 끌어모았다.

공습을 동반한 야간 급습 작전, 총살, 고문은 아프간전쟁의 성격과 본질을 규정하는 세 가지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전 수행 주체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 전쟁 내내 채택된 공격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2007년 5월 3일 낭가르하르 카니켈 지구 쉬르겔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나흘 전인 4월 29일 공습을 당했던 곳이다. 당일 새벽 2시쯤, 주민 모두가 잠들었을 때 미군은 탱크 7대와 헬리콥터 2대를 끌고 이곳을 들이닥쳤다. 마을 들머리에 폭탄을 투하한 것을 시작으로, 담을 넘어 가옥에 침입해 총격도 가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온 자나트 굴(당시 50세)이 먼저 쓰러졌고, 야외에서 잠을 자던 그의 친·인척 3명(부부와 딸)이 뒤이어 사망했다. 도망치던 이브라임(당시 35세)은 풀밭에서 죽었고, 압둘 나지르(당시 30세)도 목숨을 잃었다. 이후 미군은 이 사건을 ‘교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마을에 ‘반군’은 없었다.

현재 저항세력 구심점인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을 이끄는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와 함께 ‘반(反)탈레반 전선’을 구축한 암룰라 살레 전 부통령이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건, 그가 NDS 국장(2004~2010년 재임)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2007년 11월 보고서를 통해 NDS의 구금자 고문과 학대를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NDS에 대한 우려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고 명시했다. 2002년은 바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속전속결로 진행돼 탈레반도 거의 무장해제된 시기다. 전쟁은 그때 끝났어야 했다. 2002년, 2007년, 2018년 그리고 2021년 카불 공항 참극까지, 20년을 관통해 온 이들의 반인권적 방식 탓에 탈레반은 부활했고, 결국 다시 카불로 돌아왔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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