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접 겨냥 아니어서 외교 쟁점화 한계
장기화할 경우 한중 수교 30주년에 찬물 격
중국의 ‘K팝 옥죄기’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지만, 정부는 당장 중국 정부에 항의나 시정 요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한국만 표적 삼았다고 보기 어렵고, K팝 시장 규제가 아닌 자국 연예계를 단속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 외교적 대응 명분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8일 “최근 자국 연예계를 겨냥한 중국 정부의 다양한 조치와 한류 산업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15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방한을 계기로 열리는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K팝 문제를 논의할지에 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면서 “중국 측 조치와 무관하게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교류 확대는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얼마 전부터 자국 연예계의 과도한 팬덤 문화를 손보겠다며 대대적인 규제를 단행하고 있다. 탈세 혐의가 있거나 이중 국적을 가진 연예인을 퇴출시키는 한편, ‘냥파오(娘?)’로 불리는 여성스러운 외모의 남성 연예인의 방송 출연도 제한했다. 1940년대 잘못된 풍조를 바로잡겠다고 펼친 ‘정풍(整風)운동’이 부활했다는 풀이가 나왔다.
K팝도 규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는 최근 방탄소년단(BTS)과 NCT, 엑소, 아이유 등 한국 연예인 팬클럽 계정 21개의 운영을 무더기 정지했다. “비이성적으로 스타를 추종하고 응원하는 내용을 전파했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한류 확산을 차단하겠다는 점에서 ‘제2의 한한령(限韓令ㆍ한류 제한령)’이 가시화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외교가에선 2016년 한한령 사태 때처럼 우리 정부가 중국에 강하게 항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5년 전에는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대응한 ‘정치적 보복’ 성격이 뚜렷했다. 반면 이번 정풍운동은 특정 국가를 상정한 통제가 아닌, 자국 연예계 길들이기 목적이 도드라지고 한류 팬덤 제재도 그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고위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K팝을 콕 집어 문제 삼은 것 같지는 않다”면서 “내부 사정에 기반한 판단인 만큼 양자 외교 차원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직까지는 철퇴를 내린 대상이 온라인 팬클럽 정도여서 K팝 산업 자체를 겨냥한 건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한 중국대사관도 왕이 부장 방한을 앞두고 논란 확산을 우려한 듯, 이날 별도 입장을 내고 “중국의 행동은 공공질서와 양속에 어긋나는 언행만을 겨눈 것이어서 다른 나라와의 정상적인 교류에 지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중국의 ‘문화 규제’가 언제까지 이어지느냐이다. 정풍 운동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게 분명하다. 양국은 왕 부장의 이번 방한 기간 2021~2022년 한중 ‘문화교류의 해’ 제정을 목표로 한 인문교류촉진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겉으로는 문화 교류를 확대하겠다면서 실상은 K팝을 옥죄는 중국의 모순된 행태가 길어지면 국내 반중(反中) 정서는 더욱 고조되고, 정부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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