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남 구례군청 안팎에선 '군수와 사무관' 얘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A사무관이 자신의 동의 없이 불법 파견 인사 발령을 냈던 김순호 구례군수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일각에선 "인사권자가 인사권을 신중하게 행사하지 않은 데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경찰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구례군 등에 따르면 구례경찰서는 A사무관이 지난 6월 말 김 군수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수사 중이다. A사무관은 고소장에서 "김 군수가 나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전남도로 불법 파견 인사 발령을 냈는데, 이는 김 군수가 직권을 남용해 구례군 인사 담당자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학교 동창 사이인 A사무관과 김 군수 간 갈등은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척면장이던 A사무관은 문척면민을 상대로 문척면 주요 업무보고회를 열고 면정보고서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이로 인해 김 군수는 같은 해 2월 예정됐던 '읍면순회 군민 공감 대화'에서 군정보고서를 배부하지 못하게 됐다. 공직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치단체 활동 상황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을 분기별로 1종 1회를 초과해 발행?배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김 군수는 A사무관을 공무원 성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경고)하고, 그해 7월 A사무관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남도로 1년간 파견근무 발령을 냈다. A사무관은 홀로 지내는 팔순 모노 봉양과 고교 3학년인 아들의 입시를 앞둔 가정 형편 때문에 파견을 철회해 달라고 김 군수에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사무관은 "보복성 인사 조치"라며 전남도 소청심사위원회에 파견근무 발령 취소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지난해 1월 김 군수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해 7월 1심은 "A사무관에 대한 인사 발령은 파견에 해당하고 그 절차상 위법이나 재량권 남용이 없다"고 김 군수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김 군수는 A사무관에 대한 파견 인사 발령을 1년 더 연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해당 재판부는 A사무관이 전남도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업무를 배워서 복귀하면 해당 업무를 맡기려고 했다는 김 군수 주장이 거짓임을 꼬집었다. 실제 A사무관은 전남도에서 케이블카 소관 부서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 또 지방공무원 임용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소속 공무원을 파견하려면 파견받을 기관의 장(長)이 파견을 미리 요청하도록 돼 있지만 당시 전남도지사는 파견을 요청하지 않았다. 김 군수가 A사무관을 인사발령한 단초는 전남도지사가 발송한 '전남도-시·군 간 전입·전출 인사교류 희망자 수요조사 안내' 공문이었다. 이 공문엔 상호 협의 후 교류 희망자에 대해 전출·전입을 추진한다고 돼 있었지만 김 군수는 전출을 희망하지도 않은 A사무관을 인사 조치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근무지 변경과 수행 업무의 종류·내용 등도 중대한 변경으로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견 대상 공무원의 동의를 받지 않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김 군수는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이 A사무관 파견을 불법으로 최종 판단하면서 김 군수의 처지는 딱해졌다. 법원 판결에 따라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석 달이 다 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뭉그적거리고 있다. A사무관은 "후배 공직자들이 억울한 보복성 인사를 당하지 않도록 선례를 남기고,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며 "그러나 경찰 수사가 속도감이 떨어져 보여 과연 수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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