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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신의 직장

입력
2021.09.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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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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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5대 시중은행과 3대 국책은행의 희망퇴직자 숫자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직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없다니, 역시 ‘신의 직장’답다고 할 일이 아니다. 정작 국책은행 직원들은 “나가고 싶은데 정부가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2014년 “금융 공공기관의 명예퇴직금이 과도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이었다. 정년까지 받을 임금의 85~95% 수준이던 국책은행 명퇴금이 이후 45%로 줄었다. ‘이 돈 받고는 못 나가지’로 시작된 희망퇴직 실종 현상은 벌써 7년째 진행형이다. 2016년 30명이던 기업은행의 희망퇴직 후보군(임금피크제 대상자)은 올해 1,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3대 국책은행의 임금피크 대상 직원은 5년 새 7배가량 늘었다.

올해는 약과다. 기업은행은 내년 임금피크 직원 비중이 11%에 달할 전망이다. 산업은행도 1990~1992년 입사한 팀장급 직원만 427명으로, 전체의 12.5%에 달한다. 이들이 조만간 모두 임금피크 대상이 된다. 이미 비대해진 ‘뒷짐 진 고참 군단’이 앞으로 더 늘어날 판이다.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늙은 신’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종일 산책하다 퇴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슨 소리냐. 당장 제대로 일을 시키면 되지” 하겠지만 은행 내부에선 “월급을 절반도 못 받는 사람에게 규정상 제대로 된 일을 강제할 도리가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요즘은 국책은행도 시중은행처럼 앞다퉈 디지털 조직을 신설하며 체질 개선에 혈안이다. 하지만 갈수록 일 맡길 사람은 줄어든다. 한정된 소수에 일이 더 몰리는 구조다. 젊은 피가 필요해도 인건비 제한으로 신입사원은 더 뽑지 못한다. 최고로 선망받던 청년 일자리가 이렇게 날아가고 있다.

여기까지는 금융권에 잘 알려진 얘기다. 한심한 건, 수년째 이런 현실이 그대로여서다. 작년 2월엔 기획재정부 출신 국책은행장들까지 모여 이른바 노사정 대화도 했다. “지금처럼 두면 각종 수당과 복지비용으로 인건비가 오히려 더 드니, 적당한 명퇴금과 함께 조기퇴직을 허가해 돈을 아끼자”는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지만 예산 승인권을 쥔 정부의 반대를 여전히 넘지 못하고 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국회 답변은 원론일 뿐, 기재부는 “국민 여론과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완강하다. “임금피크 인원을 중소기업에 파견해 활용하고 임금피크 제도 개선도 유도하겠다”는 첨언도, 시행이 없는 한 공허한 메아리다.

국책은행과 정부는 서로를 탓한다. “기재부가 허락을 안 해줘서”와 “형평 원칙까지 깰 수 없다” 사이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 사이 쪼그라드는 청년 일자리, 국책은행의 경쟁력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된다. 기재부 공무원도, 국책은행 노사도 “어쨌든 내 월급은 나오니까” 급할 것 없는 걸까.

무섭게 늘어나는 국책은행의 '늙은 신'들처럼, 세계 최고 속도 고령화는 한국 사회 곳곳에 시한폭탄을 깔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미뤘던 숙제들이 조만간 줄줄이 터질 게 뻔하다. 청년의 미래와 국가의 세금을 모두 축내는 걸 막으려면 당장 무슨 수라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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