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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조짐, 난민 유입, 서방 압박·회유까지... ‘아프간 딜레마’ 빠진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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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조짐, 난민 유입, 서방 압박·회유까지... ‘아프간 딜레마’ 빠진 파키스탄

입력
2021.09.06 21: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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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단체 TTP, 국경 지역서 자폭 테러
아프간 탈출 행렬 몰려 난민 압사 '참변'
서방, 난민 수용 대가로 경제 지원 제시
파키스탄엔 압박이자 실리 얻을 '기회'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중부 차만에서 1일 탈레반을 피해 육로로 고국을 탈출한 아프간 피란민들이 철도 옆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차만=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 중부 차만에서 1일 탈레반을 피해 육로로 고국을 탈출한 아프간 피란민들이 철도 옆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차만=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자, 파키스탄은 임란 칸 총리부터 군부, 야당에 이르기까지, 정파를 불문하고 즉각 이러한 축하 메시지를 쏟아냈다. 탈레반 1기 아프간 정권(1996~2001년)을 인정했던 극소수 나라들 중 한 곳다운 행보다. “분리될 수 없는 형제”(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라 할 만큼, 양국 관계는 긴밀하다.

하지만 현 상황을 접하는 속내가 그리 편치만은 않다. 탈레반 재집권 탓에 테러단체들과 이슬람 근본주의 정파가 세력 불리기에 나서며 파키스탄 정세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난민도 골칫거리다. 탈레반을 마냥 지지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꼴이다.

파키스탄이 당면한 최대 난제는 ‘테러 위협’이다. 극단주의 단체 ‘파키스탄 탈레반(TTP)’이 벌써 활개를 치고 있다. 5일 남서부 퀘타 외곽 국경 검문소에서는 TTP의 자살폭탄 테러로 국경수비대 4명이 숨졌다. 2007년 이슬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파키스탄 내 무장단체 13곳이 연합한 TTP는 탈레반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아프간 탈레반과는 별개 조직이다.

5일 파키스탄 남서부 퀘타 외곽 검문소에서 보안요원들이 자살폭탄 테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발생한 폭탄 테러로 최소 4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퀘타=AP 연합뉴스

5일 파키스탄 남서부 퀘타 외곽 검문소에서 보안요원들이 자살폭탄 테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발생한 폭탄 테러로 최소 4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퀘타=AP 연합뉴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TTP가 지난 10년간 파키스탄에서 저지른 테러는 무려 1,800건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보고서에서 “TTP가 아프간 접경 지역에 대원 6,000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행정력이 덜 미치는 지방부터 점령해 가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이는데, 탈레반과 유사한 전략이다. 미 육군사관학교 대(對)테러 전문가 아미라 자둔은 “파키스탄 정부군 공격으로 약화된 TTP가 2018년 새 지도자 누르 왈리 메수드 지휘 아래 재편됐다”며 “이들은 아프간 탈레반을 ‘따라야 할 선례’로 여긴다”고 말했다.

중앙 정치권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강력한 이슬람 율법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해 온 초극단주의 이슬람 정당들이 들고 일어났다. 유력 야당 지도자 파즐루르 레만은 “탈레반이 승리했듯, 파키스탄도 칸 총리 축출을 위한 선거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하미드 울 하크 전 의원도 “나라에 이슬람 체제를 가져오기 위한 투쟁에 나서자”는 성명을 냈다. 무하마드 아미르 라나 파키스탄평화연구소장은 “근본주의 세력은 아프간에서 이슬람 통치가 실현되면 파키스탄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가와 사회, 종교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완전히 바꾸는, ‘국가 내러티브’의 새로운 전쟁이 출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프간 난민은 가뜩이나 곤궁한 파키스탄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이미 아프간인 200만 명 이상이 국경을 건넌 것으로 추정된다. 난민 추가 수용을 거부하며 국경을 걸어 잠갔지만, 접경 지역은 피란민들로 아수라장이다. 북부 차만 국경에선 1일 압사 사고도 발생했다. 모아잠 아마드 칸 파키스탄고등판무관은 최근 영국 BBC방송에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도미닉 라브(왼쪽) 영국 외무장관이 3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안보 문제 및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슬라마바드=AP 연합뉴스

도미닉 라브(왼쪽) 영국 외무장관이 3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국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재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안보 문제 및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슬라마바드=AP 연합뉴스

파키스탄을 향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회유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를 겪은 유럽은 파키스탄을 ‘아프간 난민 유입 저지선’으로 삼으려 공을 들이는 중이다. 파키스탄을 지렛대 삼아 탈레반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최근 일주일간 영국, 독일, 네덜란드 외무장관들이 잇따라 파키스탄을 방문, 인도적 지원과 경제 협력을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파키스탄 덕에 대피 작전도 성공했다”는 찬사마저 곁들였다.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적잖은 ‘압박’인 동시에,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경제 원조ㆍ무역 혜택ㆍ문호 개방 등을 얻어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국에는 △코로나19 여행 금지국가 제외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 불법국가 명단 제외 등을, 유럽연합(EU)에는 △수출품 저관세 유지 △파키스탄 항공사 재취항 등을 각각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한 상황에서 역내 자국 이익을 보장하려는 모든 나라는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영향력 행사에도 나섰다. 아프간 내 군사적 불안 통제가 1차 목적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파이즈 하미드 파키스탄 정보부 수장이 4일 카불에서 극비리에 탈레반을 만났다고 전했다. 양측은 중앙집권적 군사 체계 통합 방안과 탈레반 내 파벌 간 이견 조율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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