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오이드 생산·판매 기업 美 퍼듀 파머
소유주는 '12조원 자산 보유' 새클러 가문
법원, '합의금 5조원' 조건 파산 신청 승인
검찰 "피해자들에 모욕적 결정" 항소 방침
미국 연방파산법원이 마약성 진통제 성분인 ‘오피오이드’를 생산해 온 제약사 ‘퍼듀 파마’의 파산보호 신청을 합의금 45억 달러(약 5조2,000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수십 만명의 인명 손실 사태와 관련, 고작 돈을 대가로 퍼듀 파마 소유주인 억만장자 새클러 가문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미 뉴욕주(州) 연방파산법원 로버트 드레인 판사는 2019년 퍼듀 파마가 오피오이드 남용 사태와 관련해 유죄를 인정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내겠다는 조건으로 낸 파산보호 신청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퍼듀 파마와 새클러 가문은 9년에 걸쳐 모두 45억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불해야 한다. 퍼듀 파마는 파산 절차를 밟은 뒤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하고 새클러 가문에는 추가적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드레인 판사는 “판결이 지연될 경우 피해자들에게 미치는 추가적 손실이 더 크다는 점에서 승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마약 성분인 오피오이드는 수술 후 환자나 암 환자가 겪는 극심한 통증을 경감시키는 목적의 진통제다. 1996년 오피오이드 생산을 시작한 퍼듀 파마는 의사들에게 돈을 주고 처방을 늘리는 등 불법 행위를 써 가며 약을 팔아 왔다. 2000년 이 회사의 오피오이드 매출액은 소비자 판매로만 따져도 11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그 이후에도 판매량이 치솟으면서 매출은 수십 억 달러로 급증했으나, 오피오이드 남용 사례 급증으로 미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09~2019년 미 전역에서 50만 명 이상이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퍼듀 파마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고, 과도한 마케팅으로 약물 오남용을 부추겼다는 혐의가 인정됐다.
문제는 피해 규모에 비춰 합의금이 충분하다고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퍼듀 파마가 제출한 파산계획서를 보면 합의금 중 일부는 오피오이드 중독 피해자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된다. 피해 사실이 확인된 13만여 명에게 3,500~4만8,000달러씩의 보상금을 각각 지급한다. 새클러 가문의 자산 규모는 110억 달러(약 12조7,6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블룸버그 공중보건 대학의 조슈아 샤프스타인 교수는 “너무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회사와 가문이 보유한 자산도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두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도 “법원의 이번 결정은 오피오이드 사태 피해자들에게 모욕적”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법원의 이번 판단과 관련, “존슨앤드존슨 등을 비롯, 오피오이드 사태와 관련해 아직 남아 있는 기업들의 소송전에서 중요한 전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약사 존슨앤드존슨과 유통업체 맥케슨, 아메리소스버켄, 카디널 등 3대 유통업체는 앞서 관련 소송을 제기한 주정부와 모두 260억 달러 규모의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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