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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스타가 들려준 평화의 메시지

입력
2021.09.02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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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비틀스의 멤버였던 링고 스타가 7월 7일 81세 생일을 맞아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 있는 '평화와 사랑' 조각상 앞에서 부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비틀스의 멤버였던 링고 스타가 7월 7일 81세 생일을 맞아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 있는 '평화와 사랑' 조각상 앞에서 부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링고 스타(Ringo Starr)의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그날 강연의 주인공이었다. 비틀스의 멤버이자 '드러머들의 드러머'라 불리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럼 연주자로 인정받는 링고 스타는 얼마 전 81세의 생일을 맞이했다. 13년 전 생일을 며칠 앞두었을 때 한 기자가 어떤 선물을 갖고 싶은지 물었다. 링고 스타의 대답은 독특했다. 물건이 아니라 무형의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내 생일의 정오에 잠시나마 평화와 사랑의 순간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그때부터 매년 생일이 찾아올 때마다 링고 스타는 '평화와 사랑'을 외치며 가족과 함께 케이크의 촛불을 밝혔고, 그의 팬들은 정오시간에 맞춰 해시태그 #PeaceAndLove를 공유해 왔다. 평화와 사랑의 물결은 인터뷰의 즉흥적 대답을 씨앗 삼아 어느새 뿌리 깊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링고 스타의 노래 '이제 때가 왔다(Now The Time Has Come)'가 그날 강연의 주인공이었다. 리버풀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링고 스타가 드럼을 처음 접했던 곳은 어린이 병원이다. 맹장과 결핵 합병증으로 입원했을 때 어린이 환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작은 드럼을 선물받았다. 왼손잡이였던 링고 스타는 오른손잡이에게 맞춰진 드럼 킷의 세팅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연주했었다. 덕분에 그의 리듬감각은 독특한 개성이 자연스레 스미며 진화를 거듭해 갔다. 공장의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우연히 비틀스 멤버들과 의기투합하면서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날 강연의 주인공이었던 링고 스타의 노래는 '세계 평화'의 음악적 상징이 되었다. 2016년 9월, 링고 스타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Now The Time Has Come'을 발표한다. 그의 생일 정오에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했던 것처럼, 유엔의 결의를 통해 1981년 제정된 세계평화의 날도 9월 21일, 단 하루만이라도 적대행위를 멈춘 휴전으로 비폭력의 가치를 설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링고 스타는 이 노래에서 과거와 미래 세대를 연결한다. 오랜 세월 평화를 꿈꿔왔지만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되었던 수백만의 사람을 기억하는 동시에 이 땅에 도착할 미래 세대를 위해 전쟁의 반목에 맞선 평화의 물결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링고 스타 특유의 리듬 감각이 스민 가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제 때가 왔다 / 모두를 위한 시간이 왔다 / 무기를 모두 내려놓고 / 사랑의 빛이 계속 비추게 하라."

그날 강연에서 링고 스타가 부른 평화의 노래를 만난 수강생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절박한 공감을 나누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생존을 위협당하고, 기후가 뒤틀리며 감염병이 창궐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등 여러 임계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임계폭풍의 시기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이 총체적 위기에 대응하는 데까지 인류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두가 두려움을 토로했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이제 때가 왔다'는 링고 스타의 노래를 들으며 '마침내 끝이 시작되었다'는 이문재의 시 구절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다. 이 끝을 시작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이번이 마지막 끝일지도 모른다는 시인의 준엄한 경고는 뭇 생명을 보듬어 안았던 어머니 지구를 기리고 있었다.

왜 인간은 지구행성의 주인이 인간 자신이라 믿어온 것일까. 특정 지역이나 사회에 국한된 위기가 아니라, 지구생명 전체를 위태롭게 위협하고 있는, 이른바 지구문명의 행성적 위기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링고 스타의 노래는 9월에 펼쳐질 'Peace Bar Festival'에서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며 절박히 평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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