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요리 덕후' 과학자가 실험 끝에 찾아낸 '궁극의 버거' 레시피

입력
2021.09.04 07:00
16면
0 0

<12> '현대 요리'와 궁극의 햄버거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과학자이자 '현대 요리(Modernist Cuisine)'의 저자 네이선 미어볼드. 출처 MC 프레스킷

과학자이자 '현대 요리(Modernist Cuisine)'의 저자 네이선 미어볼드. 출처 MC 프레스킷

2011년 5월 14일, 책 한 질이 출간되었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게 책이니 뭐 대수로울 게 있겠느냐만 이건 좀 달랐다. 양장본 전 5권에 2,400쪽, 한 질의 총 무게가 24㎏을 넘긴다. 무지막지한 무게와 부피 탓에 아마존의 1차 배송 테스트도 실패했다. 결국 두꺼운 아크릴 전용 상자를 짜 담고 나서야 배송이 가능해졌다. 어찌 보면 정말 시의적절한 배송 테스트였다. 책이 출간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가 곧 매진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피와 무게도, 그리고 그에 걸맞은 가격(625달러, 약 73만 원)도 독자의 호기심을 막지는 못했다.

'과연 이런 책이 이 무게와 부피와 가격에 팔릴 것인가?'라는 저자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요리연구가인 네이선 미어볼드의 '현대 요리(Modernist Cuisine)' 이야기다. 10년이 지난 지금 책은 2021년 9월로 7쇄를 찍었고 이제는 둔탁한 아크릴 상자가 아닌 날렵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겨 나온다. 역사와 기초(1권), 기술과 장비(2권), 동물과 식물(3권), 식재료와 손질법(4권), 완성 요리 레시피(5권)의 구성이다.

"사람들이 묻곤 하죠. '고작 햄버거에 그렇게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요? 갈아낸 고기의 결을 가지런히 정렬시켜 패티를 만들고 액체질소에 겉면을 지진 뒤 기름에 튀겨야 한다니요.' 글쎄요, 여러분이 햄버거를 사랑한다면 궁극의 버거가 무엇인지 아는 그 자체만으로 멋지지 않을까요? 궁극적인 버거를 평생 한 번도 못 먹어볼 수는 있죠.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안다는 건 여전히 멋진 일이 아닐까요?"

책 '현대 요리', 궁극의 햄버거 레시피에 관해


총 5권으로 이뤄진 책 '현대 요리'. 출처 MC 프레스킷

총 5권으로 이뤄진 책 '현대 요리'. 출처 MC 프레스킷


책 '현대 요리'에 실린 브로콜리 요리 사진. 출처 MC 프레스킷

책 '현대 요리'에 실린 브로콜리 요리 사진. 출처 MC 프레스킷


궁극의 햄버거 의미를 설명하는 그로부터 활기가 넘쳐 나온다. 말도 몸짓도, 그리고 눈빛마저도 활기가 넘치다 못해 터져 흘러 나올 것만 같다. 비단 이 영상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을 찾아보더라도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압도당한다. 그런 그의 모습과 현대 요리 시리즈를 병치시키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덕중지덕은 양덕'이라는 우스개에 말이다. 주로 서브컬처의 한 곁가지나 작품 등을 죽어라 파는 '오덕후', 즉 오타쿠는 원래 일본의 산물이다. 하지만 서브컬처 자체가 수출되면서 오타쿠의 개념 또한 함께 바다를 건너가 서양의 오타쿠, 즉 '양덕(서양덕후)'이라는 소비층이 출현했다.

덕중지덕은 양덕이라는 우스개는 이제 오타쿠 가운데서도 서양 오타쿠가 가장 열정적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뉴욕 같은 극히 일부의 대도시가 아니라면 미국의 시간과 삶은 매우 느리게 흘러간다. 광활한 땅덩어리 어딘가에 한 톨의 먼지처럼 살기 일쑤이니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열중할 만한 대상을 더 열심히 찾게 되고, 일단 찾고 나면 더 여유롭고도 깊이 빠져들 수 있다. 나도 한마디쯤은 보탤 수 있다. 아무런 연고 없는 미국에 살지 않았더라면 하루에 8시간씩 요리를 독학하거나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평론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양덕들 가운데서도 '요리덕'인 네이선 미어볼드는 급이 다르다. '양덕의 왕'이랄까? 이름 앞에 아무런 수식어도 붙이지 않은 건 경력이 지나치게 화려해 하나만 꼽기가 어려운 탓이다. 뿌리를 따지자면 그는 과학자다. 응용수학과 이론 물리학을 공부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스티븐 호킹 교수의 연구를 도운 적도 있다. 한편 졸업 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4년간 전략 및 기술 담당 최고 책임자로도 일한 바 있다. 이후 자신의 회사이자 싱크탱크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utual Ventures)를 설립해 발명과 특허 기술 개발에 힘 쏟고 있다. 현재까지 인증받은 특허만도 774건, 미국 특허청을 검색하면 '극저온을 이용한 굴 껍데기 까는 법' 등이 눈에 들어온다.

네이선 미어볼드가 궁극의 햄버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C 유튜브 캡처

네이선 미어볼드가 궁극의 햄버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C 유튜브 캡처

양덕의 왕으로서 그의 '덕심'이 가장 밝게 빛나는 분야가 바로 음식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키워온 열정으로 불과 아홉 살의 나이에 도서관의 요리책을 뒤져 찾은 레시피만으로 칠면조를 비롯한 추수감사절 식탁 일체를 차려낼 정도였다. 집에 바비큐 기계를 들여놓으려다 인연이 닿아 달인과 합류, 세계 바비큐 챔피언 선발전에서 우승한 전력도 있다. 심지어 일터를 잠시 떠나 프랑스의 학교며 시애틀의 레스토랑을 거쳐 정식으로 요리 수업 및 실습마저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가 현대 요리를 펴냈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과학과 요리의 집결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건 'DIY(Do It Yourself)' 정신 덕분이었다. 새로 집을 지어 첨단 주방기기를 잔뜩 들여놓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정보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수비드이다. 식재료를 끓는점보다 낮은 조리 목표 온도에 담가 천천히 익히는 조리로 '저온 조리'라고 통한다.

지금이야 다이어트용 닭가슴살에도 수비드라는 딱지가 붙어 나오지만 2000년대 말의 사정은 달랐다. 해롤드 맥기가 집대성한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 속의 이론을 직접 검증하려 들어도 그에 맞는 조리 도구가 지금만큼 대중화되지 않았었다. 답이 없다면 스스로 찾는 것도 방법인지라 그는 실험에 돌입한다. 소고기와 연어 등 다양한 식재료를 익혀가며 온도와 조리시간 및 상태를 파악하는 한편, 계산용 소프트웨어인 '매스매티카'로 재료의 크기며 형태에 따른 열전도율을 시뮬레이션한다. 결과를 음식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하니 '책을 내라'는 반응이 나왔고, 의욕을 얻는 그는 요리사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발족한다.

책 '현대 요리'에 실린 고기 요리 사진. 출처 MC 프레스킷

책 '현대 요리'에 실린 고기 요리 사진. 출처 MC 프레스킷

현대 요리는 지금껏 규명된 조리 이론과 소위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라 일컫는 최신 요리 기법을 총망라한다. 책 속에서 과학은 조리의 원리를 꿰뚫어 보는 눈, 기술은 그를 바탕으로 여태껏 불가능했던 완성도를 이끌어내는 손발의 역할을 각각 맡는다. 햄버거 패티는 간 고기의 결을 살린 채로 빚어 저온 조리를 거친 다음 액체 질소에 튀겨내,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레어로 익힌 듯 부드럽다. 프렌치프라이는 초음파 처리를 포함해 무려 다섯 가지의 다른 레시피를 통해 완벽히 튀겨낸다.

과연 이런 책이 가정 요리사에게 현실적일까? 복잡하며 가격도 높은 기기와 도구에만 기대는 조리는 아닐까? 현대 요리 출간 후 이런 비난을 받자 미어볼드는 논박에 나선다. 가정용 조리 도구로만 실현 가능한 레시피를 개발해 집대성한 '현대 가정요리(Modernist Cuisine At Home, 2013)'를 펴낸 것이다. 이어 2017년에는 현대 요리와 같은 개념적 접근을 적용한다. '현대 제빵(Modernist Bread)'도 출간했다. 전 5권, 2,642쪽에 20㎏이 넘는 엄청난 분량에 바게트부터 식빵에 이르는 현존 발효빵의 역사부터 재료, 레시피를 총망라했다. 올해 10월에는 전 3권짜리 '현대 피자(Modernist Pizza)'가 출간 예정인데, 이미 예약 판매만으로 초판이 매진됐다.

네이선 미어볼드의 주방. 실험실을 방불케 한다. 출처 MC 프레스킷

네이선 미어볼드의 주방. 실험실을 방불케 한다. 출처 MC 프레스킷


궁극의 버거 패티

따라할 수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따라하자니 레시피를 읽어보면 번거롭다. 고기갈이를 포함한 조리도구 일습을 갖춘 나조차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제맛을 내자면 액체질소도 갖춰야 하는데 그런 게 가정집에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의 레시피는 따라하라고 소개하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한없이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러니까 그저 간 고기를 사다가 손에 조금만 힘을 주어 뭉치면 되는 패티도 사실은 온갖 국면에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취지이다. 네이선 미어볼드가 말한 것처럼 '생전 못 먹어볼 수도 있지만 궁극의 버거가 무엇인지를 아는' 재미는 누려볼 만하지 않겠는가?

재료

갈비, 목심 등 마블링이 잘 발달된 소고기 부위(지방 비율 30%) 1kg

만드는 법

①고기를 냉장고에 하루 이상 차게 보관한다.

②얼음이나 액체질소에 고기갈이를 담가 0도 이하로 냉각한다.

③①의 얼린 고기를 각 변 길이 2cm로 깍둑썰기한 뒤 냉동고에서 영하 1도로 얼린다. 이때 고기에 소금을 치지 않는다.

④고기를 3~4mm짜리 구멍이 뚫린 틀을 통과시켜 갈아낸다. 이 때 갈아낸 고깃결을 살리는 게 중요하므로 고기를 무리해서 눌러 갈지 않는다.

⑤수직으로 반 나뉘는 원통형 틀(또는 단면이 반구인 긴 틀 두 점)을 준비해 안쪽면에 플라스틱 랩을 씌운다. ④에서 갈려 나오는 고기의 결을 그대로 살려 틀을 채운다.

⑥틀 두 점에 고기를 채운 뒤 둘을 맞대어 원통을 완성한다.

⑦틀에서 플라스틱 랩으로 씌운 고기를 꺼낸 뒤 전체를 사탕 포장지 말듯 가볍게 힘주어 말아 전체를 고른다. 이때 고기에 너무 힘을 주어 누르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패티의 폭신함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한다.

⑧날카롭게 벼린 칼로 ⑦의 패티 덩어리를 원하는 두께로 썬다. 랩을 벗겨내고 바로 구워 먹거나 냉동보관한다.


음식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