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과 식당, 거실이 한데 모여 있는 지금의 보편적인 아파트 구조는 1980년대 중반에야 완성됐다. 1970~1980년대 초 아파트만 해도 부엌과 다른 공간 사이에는 여전히 구획이 남아 있었다. 부엌을 좋게 말하면 내밀한 공간, 나쁘게 말하면 열등한 공간이라고 보던 인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건축역사학자인 저자는 부엌이 지금처럼 거실과 구분 없이 트인 것은 더 이상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고, 더 이상 부엌에 남자가 들어가도 흉이 아니게 된 생활문화의 변화와 동시에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도시도 건축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냥갑 아파트'라며 몰개성의 상징처럼 홀대받지만, 아파트에도 한국인이 살아온 자취가 배어 있다. 삭막하다며 비판받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지만, 튼튼하고 경제적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문명의 혜택을 주었다는 점은 외면할 수 없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전통 건축 찬양이나 현대 건축을 비난하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전통 목조 건축, 온돌, 마루의 변천 과정에서 우리 건축의 고유성을 찾고 이를 세계 건축사와 비교해 가며 한국 건축 문명의 시공간적 위치를 확인하는 데 주력한다. 다채로운 건축 문화는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서 시작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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