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한앤코에 결국 '계약 해제' 통보
"경영권 포기" 약속 진정성 의심 눈초리
홍원식 회장 '변심'에 "몸값 올리기 시도" 관측 나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5월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남양유업 매각이 계약 체결 3개월 만에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남양유업과 주식매매계약을 맺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한앤코)가 합의사항 이행을 거부했다며 홍원식 회장이 1일 계약 해제를 통보하면서다.
이미 한앤코는 남양유업과 계약이행을 둘러싼 소송을 시작한 상태다. 업계에선 5월 '경영권 포기'와 '눈물의 사퇴'를 선언했던 홍 회장이 애초에 매각 의지가 있었는지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계약 해제는 가격 올리기 꼼수?
남양유업 불매사태 및 매각 일지. 그래픽=김문중 기자
홍 회장은 1일 입장문에서 △합의사항 이행 거부 △비밀유지의무 위반 △부당한 경영 간섭 등을 이유로 한앤코와의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매수자 측과 계약체결 이전부터 쌍방 합의된 사항에 한해서만 이행을 요청했다"며 "그러나 매수자 측은 계약 체결 후 태도를 바꾸어 사전 합의 사항 이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홍 회장과 한앤코 사이에 계약서상에는 없던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홍 회장이 두 아들의 직위 유지와 매각가격 상향 등을 요구했다가 갈등이 촉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앤코는 여전히 계약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앤코는 "홍 회장 측에서 본계약 발표 후 가격 재협상 등을 부탁했다가 8월 중순 돌연 무리한 요구를 선결조건이라고 새롭게 내세운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홍 회장은 5월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가 불거지자 회장직 사퇴를 선언하고 한앤코와 3,107억 원 규모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모든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7월 30일 매각 완료를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돌연 연기하면서 매각 절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홍 회장은 약속처럼 회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았고, 두 아들도 복직하거나 승진하며 변심한 듯한 모습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이날 매각 무산 발표도 결국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애초 홍 회장이 성급하게 회사를 헐값에 내놨고, 설사 소송에 져 배상하더라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수년이 걸릴 소송 기간 동안 시간을 끈 뒤, 결국 홍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매각 전 법정으로… '선결조건'이 쟁점 될 듯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뉴스1
결국 남양유업 매각 향방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지난달 31일 한앤코가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당장 남양유업이 다른 곳에 회사를 매각할 길은 막힌 상태다.
소송전의 쟁점은 계약 결렬 원인으로 지목된 '선결조건'이 될 전망이다. 홍 회장이 주장하는 선결조건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별도 이면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계약해제의 근거로 삼기도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법무법인 M&A 담당 변호사는 "민법상 계약해제는 중요한 채무 불이행을 기반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계약서에 나오지 않은 내용을 해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한앤코가 가처분 신청 인용을 들어, 향후 법원에서 계약 강제집행 명령을 받는 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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