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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토록 어렵게 얻은 언론자유가... 군부독재 시절 보도지침 떠올리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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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토록 어렵게 얻은 언론자유가... 군부독재 시절 보도지침 떠올리게 해"

입력
2021.08.26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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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언론을 위해 싸워온 원로언론인들 모임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에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뉴스1

자유 언론을 위해 싸워온 원로언론인들 모임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에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뉴스1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힘들고 지난한 일이다. 언론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지며 수십 년 또는 수백 년까지 지체되기도 한다. 1633년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갈릴레이는 천동설이 보편적 진리였던 당시 허위로 치부됐던 지동설을 퍼뜨려 공공질서를 깨뜨린 이단아가 됐다. 그는 결국 교회법정에서 지동설을 철회했고, 그의 저서 '대화'는 200년 가까이 금서목록에 올랐다.

민주화 이후에도 언론자유 침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2005년 MBC PD수첩이 천신만고 끝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논문 조작을 밝혀냈지만 취재 과정에서 줄기세포연구원에게 "검찰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겁을 줬다는 이유로 해당 PD는 취재윤리 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권력실세들의 압박이 있었고 PD수첩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MBC에 대한 무더기 광고 취소 사태가 벌어졌고 PD수첩 방송은 두 차례나 방송이 연기됐다.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모양은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나며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오롯이 언론의 몫이다. 삼성 X파일, BBK, 미네르바, 광우병, 천안함, 국정농단 등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들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언론은 끊임없는 제약과 방해를 이겨내야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간 우리 언론사는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그 기간 중 언론자유를 가장 많이 구가했던 때는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고 내각제 개헌이 이뤄졌던 시기다. 당시 언론 관련 조항을 개정하면서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는 기존 문구에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표현만 삭제됐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 간단한 문구 수정이 가져온 변화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언론자유는 만개했고 수많은 언론사들이 생겨났다. 일제강점기부터 언론을 탄압한 무기는 모두 헌법 하위규범인 훈령, 명령, 법률 따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5.16쿠데타로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는 다시 땅속에 묻혀버렸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양심 있는 언론인들은 언론자유를 위해 싸웠다. 특히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은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 광주학살과 더불어 언론에 드리운 질곡의 역사 역시 그러했다. 1987년 민중의 피를 대가로 언론은 자유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자유였다. 언론은 정권의 직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언론인에 대한 제약은 여전했다. 그때마다 언론인들은 무노무임, 해고, 구속 등을 불사하며 싸웠다.

그토록 어렵게 얻은 언론자유가 언론중재법으로 또 한 차례의 위기에 놓였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핵심은 징벌적 배상으로 언론을 옥죄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현장 언론인들의 반대는 예견된 일이다. 개정안은 법의 적용에서 배제될 대상의 문제, 혐의 요건(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모호한 기준, 기사 열람 차단, 구상권, 입증 책임, 법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모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혐의 요건이나 기사 열람 차단 조항은 군부독재 시절의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한다.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언론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 기능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1981년 군부독재 시절 언론을 억압할 목적으로 설립된 언론중재위원회가 언론의 허위·왜곡을 판단하고 그 시정을 명하도록 한 것은 시민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검열이며 근본적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언론 피해자 구제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시민의 언론 피해는 사후 보상책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며 이를 위한 본원적 정책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근본원인을 차단하고 언론 스스로 자율정화기능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경쟁, 약탈적 언론시장, 정파와 진영언론을 타파하고, 공영언론의 역할과 미디어리터러시를 강화하여 건강한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언론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세상은 법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데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데서 갈등이 빚어진다. 언론중재법은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 원칙을 저버렸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진리가 승리하도록 하기 위한 어떤 정책도, 술책도, 허가도 필요하지 않다"는 밀턴의 경구를 되새겨본다.

이완기 자유언론실천재단 운영위원

이완기 자유언론실천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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