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 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의 신규 채용에 나선다. 투자와 채용 계획 부문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국익을 위한 선택이다"라고 전했던 청와대의 역할론 주문에 화답한 성격이 짙다.
그동안 총수 부재에 시달렸던 삼성은 다른 글로벌 기업에 비해 부족한 미래 비전 제시로 시장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선 이날 발표된 역대급 투자 계획을 계기로 삼성 특유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 매년 80조씩 신규 투자
이날 소개된 삼성의 미래 청사진은 지난 2018년 8월 발표된 3년간 180조 원 투자계획을 크게 넘어선 그림이다. 계획대로라면 삼성은 2023년까지 매년 80조 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2년 동안 벌어들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64조 원)을 넘어선다.
2018년 당시 내놨던 180조 원 삼성의 투자계획은 예상을 뛰어넘었던 수준이다 보니 성사 가능성에 의문도 제기됐지만, 지난해 목표치를 모두 달성했다. 업계에선 삼성이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기술·시장 리더십 강화에 나선다고 공언한 만큼 투자 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삼성은 역대급 투자 단행 배경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꼽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이후, 산업·국제질서 등 사회구조의 대변혁이 예상된 만큼 과감한 투자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이 부회장은 연초 수감 전 광폭 행보에 나설 때도 "미래 기술 확보는 생존 문제다"란 메시지를 거듭했는데, 이번 투자계획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반도체는 '초격차' 바이오는 '제2 반도체'로
이날 삼성은 투자금을 차세대 미래 산업으로 주목된 △반도체 △바이오 △5세대 이동통신(5G)과 같은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로봇 등 4대 분야에 집중할 방침이다. 삼성은 지난 2018년 180조 원 투자계획을 내놓을 때도 이들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 3년 동안 이들 분야를 키우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였다면 앞으로 3년은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삼성은 글로벌 1위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선 초격차를 유지하면서도 시스템반도체는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은 이어 "반도체는 한 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한 만큼 공격적 투자는 생존 전략이다"라며 대대적인 쩐의 전쟁을 예고했다. 바이오 산업은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바이오 산업은 단순 고부가 지식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감안됐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삼성 "국민 기대와 바람에 부응"
삼성의 이번 역대급 투자·고용 계획은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 계획을 확정하기 전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관계사 경영진을 잇따라 만났다"고 전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출소 후 "국민의 기대를 잘 알고 있다"고 한 만큼 이에 따른 후속 조치 성격도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삼성 역시 "투자와 고용, 상생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활력을 높여 삼성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선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 맞춰 대규모 투자·고용계획을 내놓은 점에 비춰볼 때 오너 중심의 적극적인 경영 행보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오너 중심인 삼성의 조직 특성상 중·장기 전략의 핵심인 대규모 투자 결정은 이 부회장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직후 삼성 서초사옥에서 주요 경영진을 만난 데 이어 최근엔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부를 포함해 삼성전자 각 사업부문별로 간담회를 열어 현안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역할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곧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대외 행보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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